영월에 살아요_가을의 습격
가을의 습격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계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자주 사용한 소재라서 이제는 좀 뻔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날이 좋아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걸 어떡하겠나. 내 생활 반경이라는 게 결국 앞산, 옆산, 뒷산,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알록달록하게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산속 중턱에 홀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계절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빠져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게 된다. 맑고 파란 하늘, 청량한 바람, 그리고… 우수수… 우수수하고 떨어지는 낙엽…인 줄 알았던 벌레들! 그렇다. 오늘은 가을을 맞이해서 왕성해진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가을철 벌레에 대한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은 너무나 완연한 가을이라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울 지경이다. 그래서 마당에 자리를 펴고 노트북을 챙겨 와서 원고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습격한 건 수백, 수 천마리의 노린재와 무당벌레. 수십만, 수백만의 날파리는 어차피 퇴치할 엄두조차 나질 않으니까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활발히 활동하는 계절을 맞이한 벌레들이 온갖 사방에서 후두둑 떨어지고 날아오고 기어 오는데, 도무지 버틸 자신이 없어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 벌레 떼의 습격은 불과 며칠 사이에 시작됐다. 날이 선선해지고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확 폭발적으로 나타난 셈인데, 산중턱에 사는 이곳까지는 방역차가 오지 않으니 이 벌레떼를 퇴치해야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다. 그냥저냥한 벌레라면 큰 상관이 없다. 나 역시 영월의 아들, 시골 출신답게 웬만한 벌레는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놀면서 쌓아둔 내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집을 습격한 건 노린재와 무당벌레다. 이놈들은 그 특유의 찐~한 냄새 때문에 정말 골치가 아프다. 갑자기 툭 하고 떨어져서 몸에 스치기라도 하면 아무리 비누로 박박 문질러 씻어도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노린재 한 마리가 옷 속으로 들어가서 정말 온갖 욕을 하며 샤워를 다시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씻고 나왔음에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
‘자연은 평등하다’라는 말은 새삼 다시 체감하고 있다. 이건 모든 계절에 해당한다. 겨울을 보내고 따사로운 봄이 왔을 때, 봄바람이 너무나 좋았지만 꽃가루와 송진가루 때문에 건물을 온갖 문을 꼭꼭 닫고 있어야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온 대지와 산에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여름날에도 기승하는 날벌레 때문에 문을 꼭꼭 닫았었고, 지금 이렇게 가을날에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주고, 하나의 불편함을 주는 평등한 자연. 물론 나 역시 산에 들어와 지낸 지 2년 차. 그 해결 방법은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시간을 보내는 것,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영원히 흩날릴 것 같던 꽃가루와 송진가루도 초여름이 오며 자연스레 사라졌고, 수억 마리의 모기와 날파리도 날이 서늘해지니 모두 사라졌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이 무당벌레와 노린재 역시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언제 있었냐는 듯 싹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그다음 세대들이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겠지. ‘자연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노린재 덕분에 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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