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선생은 1911년 양산에서 태어나 1912년 창원 중동으로 이사 와 소답리 서당에 다녔다.

아홉 살 되던 해에 진영으로 이사 갔다가 열 살에 마산으로 이사 와 생활하면서 마산과는 달랐던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다.

1926년 15살의 나이에 지은 동시 「고향의 봄」은 창원에서 살던 시기의 추억이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2015년 의창동에 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2017년 ‘행복 의창 만들기’ 사업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원수 선생 동요 ‘고향의 봄’에 착안하여 꽃 대궐 길 및 읍성길을 새로 정비하여 행복 의창 테마 길을 조성하였다. 행복의창 테마 길 여유만만 길, 꽃 대궐 길, 달오름길 중에서 꽃 대궐 길을 소개합니다.

꽃 대궐 길은 구룡사에서 출발한다. 구룡사는 천주산 기슭에 세워진 대한불교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창원 도읍의 중심지였던 소답동에 있는 창원 향교 옆에 1927년 건립되었다. 1920년대 조선 침탈로 유입된 일본 불교에 맞서 조선 불교의 맥을 잇고 새 시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 포교당을 설립하면서 함께 창건된 근대 불교 포교당의 효시가 된 절이다.

구룡사를 걸어서 가면 남해고속도로 밑 지하 도로를 지나는데, 벽면에 과거 보러 가는 길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있다. 구룡사 주차장 근처에 ‘과거 보러 가는 길’(창원향교 ⇒ 구룡사 ⇒ 굴현고개 ⇒ 백월산 ⇒ 본포 나루터) 안내석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다. 그 길 가운데 한 곳이 창원 향교에서 현재의 구룡사 옆길이다. 종이를 씻어서 사용했다는 지세골과 굴현고개를 지나 백월산을 넘어 본포나루에서 낙동강을 건너갔던 길이다.

구룡사 바로 밑에 있는 대나무 숲에 ‘퇴기백영월영세불망비’가 있다. 백영월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기생이자 자선가이다. 백영월은 어릴 때 불우한 삶을 살았다. 이후 백영월은 관기가 되어 큰돈을 모든 뒤에 다시 북동마을에 돌아와 전 재산을 희사하여 마을의 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그래서 북동마을 사람들은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비석을 세웠다 한다.

구룡사에서 남해고속도로 밑 길을 걸어 내려오면 의창동 주민자치센터가 있고 여기를 지나 내려오면 북동 샘을 만날 수 있다. 옛날 창원 읍성 안팎에는 우물 4곳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읍성 안의 2곳은 동헌 앞 우샘, 객사 앞 북동 샘이다. 읍성 밖 2곳은 창원향교 옆 좌샘, 남산 대밭에 있었던 대밭 샘인데 북동 샘만 새로 단장되어 남아있다. 북동 샘 안내문에는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수질 또한 양호하여 부임하는 부사마다 감탄했다고 적혀 있다.

북동 샘 있는 곳에 “고향의 봄 동요 작가 이원수 선생 4~6세 성장지”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원수 선생이 보았을 것 같은 구룡사에서 찍은 천주산 천주암 방향의 풍경이다.

소답 시장은 2일과 7일 오일장이 열리는 재래시장이자 상설시장이다. 600년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1999년 시장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북동공설시장)을 지었으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2014년 시장 주변에 오래전부터 있던 보신제와 약재를 다루는 점포를 입점시켜 약초 전문상가로 변신을 시도하였다.

꽃 대궐 길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근에 소답 시장 건너편에 “소리단길”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소답동의 소와 ~리단길의 합성어로 의창구 소답동 일원에 있는 오래된 집을 청년 창업자들이 식당과 카페 등으로 개조하여 영업하고 있다. 산책하다 이곳을 잠시 들러도 좋다.

창원 읍성은 창원 대도호부의 행정 중심지로 성종 7년(1476)에 축조되었다. 평소에는 일반 행정 업무를 담당하다가 외적이 침입하면 창원 일대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창원 읍성은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었다. 창원시에서는 창원 읍성 동문지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인데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단계 부지 보상을 완료하였으나 시굴 조사 과정에서 아파트가 발굴지와 겹쳐 있어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창원 읍성 복원지는 임시 공영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양반 자제를 위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전국에 걸쳐 행정구역 단위로 설립되었고, 각 향교에는 학관이 파견되었다. 향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양반의 자제나 향리로서 16세 이상이었다. 향교에서는 소학, 사서오경 등 유학의 기본 경전을 가르쳤고, 매년 도회를 열어 강경(사서오경의 제시된 부분을 외워 읊고 뜻을 해석하며 통달한 것까지 말하는 구술시험), 제술(주어진 주제에 대해 시와 수필을 짓거나 주장을 담은 논술을 하는 지필시험)을 시험하여 우등생에게 생원, 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창원 향교는 조선 상반기에 건립되었으나 174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창원 향교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풍화루 등의 건물이 있다.

창원향교를 관람하고 김종영 선생 생가 가까이에 두럭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창원읍민 만인 운동비가 있다. 이 비는 1919년 3월 23일 창원 장날을 기해 김태순과 박화열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운동을 하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5년 창원 장터 인근에 건립하였다.

두럭공원 한 블럭 위에 띠앗공원이 있고 이 공원과 인접해 우리나라 현대 조각의 개척자이자 미술교육의 선구자 김종영 선생 생가가 있다. 이곳은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노랫말 속 꽃 대궐이라고 한다.

김종영 선생 생가는 1994년 마당 한가운데 도로가 나면서 본채와 별채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졌다. 생가 별채 이름은 구문정이다. 사미루는 구문정의 대문에 해당하는데 사미루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갖춘 누각’이라는 뜻이다. 네 가지 아름다움은 천하에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원수 선생의 동시 고향의 봄 배경이 되었던 곳이 천주산, 소답동 일원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꽃 대궐 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선생이 유년기를 보내며 내면의 순수한 감성을 발현하고 문학 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소답동 일원을 아이와 고향의 봄 동시를 이야기하며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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