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전
[부산 물길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5코스ㅣ부산의 축소판 영도, 우리네의 해양 문화를 음미하다
강과 바다, 물길 따라 흩어져 있는
부산 역사 문화유산
그 내력과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는 온라인 답사기
「부산 물길 역사의 발자취 찾아서」 다섯 번째 코스로
"부산의 축소판 영도, 우리네의 해양 문화를 음미하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5 코스 |
어묵(삼진어묵) ▶ 영선동 패총기념비 ▶ 국립해양박물관 ▶ 동삼동 패총전시관 ▶ 동삼 어촌마을 ▶ 태종대 ▶ 영도해녀 문화전시관 |
영도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연결되어 있는 아주 큰 섬입니다.
육지와 가까워서 섬이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영도는 어디에서든 바다가 보이는데요. 먹거리도 많고 전망이 환상적인 카페도 많으니 영도에 방문해서 쉬었다 가시길 바랍니다.
코스 5ㅣ부산의 축소판 영도,
우리네의 해양 문화를 음미하다
바다가 건네준 선물
어묵(삼진어묵)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가게 |
영도대교를 건넜다면 15분가량 걸어야 한다. 대교사거리를 지나 3분 정도를 더 직진하다 왼쪽 골목길 태종로99번길에 들어서서 300m가량 발걸음을 옮기면 삼진어묵이 나온다.
영도 여행을 어묵으로 시작한다. 어묵은 부산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영도에서 어묵 이야기를 시작하냐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 가공소’가 현재 남아 있어서다. 부산시에서는 ‘부산시 기네스북 100선’을 선정했다. 삼진어묵이라는 상호로 시작한 공장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옛 공장 터에 새 건물을 짓고 어묵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과 체험장을 운영한다. 물론 어묵도 판매하고, 맛볼 수 있다. 어묵을 만들고 요리도 해보고 싶다면 어묵 체험장을 찾아가면 된다.
‘부산오뎅’ 100년의 역사 |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을 묻는다면 결코 어묵을 빼놓을 수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어떻게 요리를 해도 맛있다. 구워도, 삶아도, 튀겨도, 졸여도, 쪄도, 그냥 먹어도 맛있다.
어묵 하면 왜 부산일까. 부산이 어묵으로 유명한 건, 부산이 바다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 앞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을 공급받아 싸고 신선한 재료로 어묵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어묵을 먹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이주해온 때부터였다. 1907년 부산에 처음으로 일본인이 어묵 공장을 세웠고, 1920년 통영에도 어묵 공장이 건립되면서 어묵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지금 어묵 하면 부산을 지칭하는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에 부산의 어묵공장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 가공소인 삼진어묵 건물 대단지를 이루며 생산을 했기 때문이다. 1936년 부산데파트 자리에 동광동시장이 들어서고 그곳에 일본인들이 여러 어묵 공장을 세웠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인들은 돌아갔지만, 어묵 공장에서 일했던 한국인들이 어묵을 만들어냈다.
한국전쟁 이후 어묵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쟁 이후라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어묵은 영양가가 높고 값싼 먹거리가 되었다.
성장하던 부산의 어묵 시장은 1990년대 침체기에 들어갔고, 대기업에서 어묵을 제품화하면서 경쟁이 되지 못했다.
어묵의 무한 변신 |
이제 어묵은 간식에서 문화와 역사가 되었다. 부산의 대표축제가 된 어묵 축제는 매년 장소를 달리하며 열린다. 어묵은 부산 곳곳에서 만들어져왔기 때문이다. 서민의 먹거리였던 어묵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당당히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어묵이 이렇게 변신한 것은 2010년부터였다.
어묵의 제2 전성기를 이끈 것은 어묵 사업을 물려받은 2세대, 3세대들이 혁신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제조와 유통과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했다. 어묵은 이제 단순하지 않다. 어떤 재료와도 조화를 이루고, 모양과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어묵 베이커리가 시도되자 카페와 레스토랑의 분위기 속에서 어묵을 즐기게 된다. 어묵은 단순한 주전부리가 아니라 고급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되었으며 한국인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영도에서 축제도 즐겨보자 |
영도의 해양 문화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축제는 부산시에서 개최하는 부산항축제, 영도구청에서 개최하는 영도다리축제다. 부산항축제는 세계적인 항구도시인 부산의 역사성과 의미를 알리기 위해 2008년 시작되었다. 영도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과 북항에 있는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일대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체험 행사로 구성된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배를 타고 부산항을 탐방하는 것이다. 대형 해군함정과 해경함정에 승선할 수 있도록 해서 이색적인 경험을 안겨준다. 2022년 제30회를 맞이한 영도다리축제는 10월에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녹여낸 역사 문화축제다.
1934년 건립된 영도다리(영도대교)는 근대 산업사의 현장이었던 영도를 떠올리는 연결장치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아픈 현대사를 대표하는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며 점을 보다 보니 점집이 생기고 그곳은 점바치골목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영선동패총기념비
신석기인들이 살다 |
삼진어묵 본관에서 영도대교 방향으로 5분가량을 걷다 대교사거리에서 보면 조개 그림과 영선동패총이라는 글이 쓰인 기념물이 보이며 작은 비석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영선동패총기념비다. 다들 무심히 지나치는 곳에 영도가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기념비 앞면에는 “패총(조개더미)이 발견된 곳”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990년 12월 영도구청에서 “1933년경에 패총이 발견된 곳으로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토기, 석기, 골각기, 조개팔찌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라고 각인되어 있다.
1933년 수습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일부 보관되어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유물은 ‘토기 융기문 발’이다. 당시에 사람들이 뭘 먹었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이다.
매립된 영선동 앞 바다 |
영선동은 영도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이지만, 일제강점기 매립을 통해 남항동이 만들어지면서 더 이상 해안에 위치한 마을이 아니게 되었다. 때문에 패총이 있는 곳은 해안가이어야 하는데, 영선동패총이 있었던 자리는 바다와 거리가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만 보인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영도는 세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평평한 땅이 별로 없었다. 현재의 지형이 된 것은 바다를 많이 매립했기 때문이다. 매립된 곳 중 영선동패총기념비와 관련된 장소는 ‘석말추’, ‘매강추’였다. 석말추는 남항동의 옛 지명으로, 이 지역 앞바다에는 큰 돌이 있었는데 썰물 때는 돌 끝이 조금 보였다가 밀물 때에는 보이지 않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강추는 현재 한진중공업 자리다. 한진중공업이 들어서기 이전 봉래동과 청학동 사이는 얕은 여울 바다였다. 매립되기 전 이곳 일대의 바다는 수심이 얕은 데다 너비가 좁아 조류가 세차게 흘렀다 한다.
석말추의 현재 이름, 남항동 |
영도 주민들은 인근 바다에서 어업에 종사하면서 생활해왔고,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선동패총기념비를 보고는 가장 가까운 어촌마을을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남항은 남항동에 있는 항구다. 남항동은 남쪽에 있는 항구라는 뜻으로 육지의 시점에서 영도는 남쪽이고 이곳에 일제강점기 항구가 건설되면서 붙여진 행정명이다.
어촌계는 1972년부터 조직된 어민들의 공동체로,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했다. 영도는 두 개의 어촌계가 어촌마을을 대표한다. 영도 북쪽과 서쪽 마을을 결집한 남항어촌계, 영도 동쪽과 남쪽 마을의 공동 조직인 동삼어촌계다.
바다를 알면 세계를 안다
국립해양박물관
바다를 보고, 바다를 읽고 |
국립해양박물관 정문은 닫혀있고 부출입구로 입장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부출입구로 가는 길에는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푸드코트가 운영 중이다. 푸드코트 위층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바다 전망이 정말 좋은 곳이라 분위기를 즐기기에도 적격이다. 물론 요리도 맛있다.
부출입문을 들어서면 넓은 로비에 안내소가 있다. 그 뒤에 위치한 해양도서관은 해양과 관련된 도서들로 가득 차 있다. 입구 왼쪽 벽면을 따라 박물관의 전시 역사를 알 수 있는 책들이 펼쳐져 있다. 전시 도록, 구술생애사 시리즈, 학술대회 총서, 번역 총서 등이 제작 시기별로 놓여 있다.
2층은 어린이박물관이 있고 특별전시관 이 있다. 어린이박물관으로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간다. 맞은 편은 특별전시실인데 전시 기간에만 열린다. 특별전시는 매번 흥미로운 주제로 준비되어 전시를 보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찾게 된다.
3층에는 터널식 대형 수조에 바다거북이가 헤엄치고 있는 수족관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인다. 왼쪽에는 커다란 배가 전시되어 있다. 조선통신사들이 탔던 배를 복원한 것으로 국립해양박물관의 대표 전시물이다. 3층과 4층의 상설전시관은 아쉽지만, 전시물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라 내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단다.
국립해양박물관 야외전시장 |
1998년 설치한 부산항 남방파제등대에서 사용하던 것을 2014년 부산항대교 건설로 철거되면서 등롱만 국립해양박물관으로 이전 설치했다. 몇 걸음 더 나가면 한국인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강동석의 요트 선구자 Ⅱ가 당당하게 서 있다.
그 바로 옆에는 ‘원양어업 진출 기념비’가 강인한 자태를 느끼게 한다. 한국 원양어업의 시작은 1957년 지남호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인도양으로 출항했던 날이다. 이를 기념하여 60주년이 되는 해에 기념비를 건립했다.
해양교류의 역사가 시작된 곳
동삼동패총전시관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패총 |
동삼동패총전시관은 한국해양대학교 입구에 위치한다. 제1전시실에는 전국의 신석기 유적을 소개하고, 동삼동패총 발굴 경과를 사진으로 보여준다. 영도에는 영선동패총, 청학동패총, 동삼동상리패총, 동삼동패총, 조도패총이 발견되었다.
이 중 동삼동패총만 온전히 유적을 유지하고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실 마지막 공간에는 패총 유적을 그대로 옮겨 한 벽면을 가득 채
웠다. 동삼동패총 퇴적층 일부를 경화처리하여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 아래 비밀 전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서랍에는 조개, 토기, 뼈조각 모형이 있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조개가면과 흑요석 |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대표적인 유물은 조개 가면이다. 한국에서 이곳만 유일하게 발굴된 유물이라는데, 조개를 보면 미소가 절로 생긴다. 눈 두 개와 큰 입이라고 생각되는 구멍이 뚫려있다. 조개의 크기는 손바닥보다 작다. 마을 제사나 축제 때 의례용으로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동삼동패총에서는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용암이 굳어서 된 흑요석은 단단하여 여러 가지 석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흑요석은 한국에 없는 암석이라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일본 규슈지역에서 제작한 조몬토기도 발견되어 동삼동패총을 형성한 사람들이 일본과 교류를 활발히 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해양대학교가 들어선 조도패총 |
한국해양대학교 졸업생들이 2007년 ‘조도패총 유적지’를 기념한 비석을 세웠다. 영도와 조도의 지형을 그리고 그 안에 이 비석을 세우
게 된 배경을 써두었다. 29기 항해기관학과 졸업생들이 졸업 30주년을 맞아 모교를 방문하며 세웠다. 그 덕분에 조도에 패총이 있었다는 흔적을 하나라도 남기게 되었다.
영도에는 영도 속의 섬으로 조도가 있다. 조도(朝島)는 아침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아치섬으로 현재 부른다. 한국해양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방파제를 건설하여 조도를 영도와 연결시켰다. 조도패총 위에 한국해양대학교가 들어서면서 조도에 있던 패총유적 중 일부와 유물은 동삼동패총전시관으로 옮겨졌다.
도시어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동삼 어촌마을
생동감 넘치는 하리항 |
‘부산시수협 동삼어촌계 동삼어촌체험 휴양마을’이라고 크게 이름 붙여진 에메랄드빛 바다색으로 외관을 한 건물이 있다. 1층은 동삼어촌체험장, 2층은 동삼어촌계 사무실이다.
그 앞으로 펼치진 항구가 하리항이다. 하리항에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선상 낚싯배와 낚시인들을 태워 나르는 여객선도 한편에 대기하고 있다. 하리항에서 동쪽을 보면 고층 아파트 단지가 생경한 경관을 제공한다. 동삼동은 동쪽에 세 개의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과거에 있었던 모래나 갯벌 해안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동삼동 일대는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어민 대부분은 옛날부터 이어온 어업방식, 즉 원시 어로를 유지한다.
어촌마을이 살아가는 법 |
동삼어촌계 사무실은 이전 몇 차례 방문했었다. 어촌마을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어왔지만, 어촌 생활은 생소했다. 동삼어촌계 사무실에는 어촌계를 총괄하는 어촌계장 1인, 행정 사무장과 체험마을 사무장 각 1인이 근무하고 있다.
하리항에 있는 동삼어촌계는 상리마을, 중리마을, 하리마을의 어업인들이 조직한 것으로 수협과 연결된다.
어민과 해녀로 구성된 동삼어촌계는 매달 25일 관계자들이 회의를 열어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한다. 어민들이 고령화되고, 어민 수도 줄어드는 데다 도시 속에 있는 어촌이 겪게 되는 어려운 문제도 풀어나가야 한다.
하리마을의 해녀들 |
하리항에서는 해녀들을 만날 수 있다.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바다로 난 광장으로 나왔을 때 왼쪽에 작은 컨테이너 하나가 있었다. 컨테이너 밖에 쳐진 줄에 해녀복이 여러 벌 걸려 있어 이곳이 해녀들의 탈의실이자 작업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해녀들도 동삼어촌계의 계원이다. 부녀회를 조직하고 회장도 선임한다. 영도는 제주도에서 출항한 해녀들이 정착한 곳으로 약 100년의 해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1세대와 2세대를 이어 3세대가 조업하고 있다. 영도에 등록된 해녀는 약 60여 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해녀는 훨씬 적다고 한다.
하리항의 해녀들이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고 싶다면 태종대 내에 있는 태원 자갈마당으로 가면 된다.
동삼 어촌체험 휴양마을 |
동삼 어촌체험 휴양마을 1층에는 어촌체험장이 있어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다진생선살로 어묵만들기, 해초 비누만들기 체험은 사전에 단체 신청을 하면 체험이 가능하다. 대학교와 연계해 ‘태종대 곰피식초’를 개발하기도 했다. ‘동삼 어촌체험 휴양마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도 있고, 마을의 일상이 담긴 정겨운 사진들도 볼 수 있다.
전문 낚시객들을 위한 유람선도 운영한다. 하리항에서 인근 무인도인 생도, 나무섬 등으로 전문 낚시객들을 데려다준다. 물론 약간의 요금은 지불해야 한다. 선상낚시도 즐길 수 있다. 하리항에는 여러 척의 낚싯배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갖가지 이야기가 숨어있는 보물섬
태종대
부산에는 태종대가 있다 |
태종대 입구에는 태종대라고 각석 된 ‘태종대유원지비’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태종대 관광안내소에서 태종대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받아 눈으로 둘러보는 것도 좋다. 태종대 입구에서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4.3km의 산책로를 걸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지만, 힘들다면 다누비 열차가 있다. 15분 간격으로 5시 30분까지 운영한다.
태종대가 이렇게 관광지가 된 것은 1970년대였다.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고 뒤이어 1969년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태종대유원지 조성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4년이었다. 지금도 해안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어 일부 지역은 출입할 수 없다.
태종대는 신라 태종무열왕이 방문했다는 데서 유래하지만, 태종대를 방문하는 사람은 이러한 설화보다는 해안 절경과 다양한 식생이 자라고 있는 울창한 숲을 먼저 느끼게 된다.
자갈마당에 펼쳐지는 해녀들의 밥상 |
태종대 근처에는 자갈마당이 세 곳 있다. 태종대에 들어가기 전 감지자갈 마당이 있고, 태종대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태원자갈마당과 등대 자갈마당이 있다. 대부분의 해변이 모래사장인 데 반해 이곳은 조약돌이 깔린 작은 해변이라 새로운 경치를 느껴볼 수 있다.
자갈마당에서는 유람선도 탈 수 있는데,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돌며 바다에서 바라보는 영도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그리고 태종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태원자갈마당은 동삼어촌계 해녀들의 노천 가게다. 몇 명이 되지 않는 해녀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교대로 채취한 해산물을 판매한다.
자살바위의 유명세를 지운 전망대 |
전망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두 아이를 안은 어머니 조각상이 보인다. 모자상이라고 이름 지어진 작품인데 이곳이 자살바위로 유명했던 슬픈
사연과 관련이 있다.
모자상 뒤로 원형의 건물은 100m가량의 절벽 위에 세워진 건물이다. 1970년대 이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한 해 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한 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려고 왔고, 실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어 자살바위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태종대 관리소에서는 이곳에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을 품어주는 석상을 세웠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인 어머니를 보면서 제발 마음을 고쳐 먹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영도등대와 신선대 바위 |
영도등대는 1906년 목도등대란 이름으로 설립된 부산 최초의 유인등대다. 2004년 등대가 전망대에 있는 모자상 노후하여 포항 등대박물관으로 일부를 이건하고, 지금은 새 등대가 부산항을 밝히고 있다.
영도등대에서 우측 해안 절벽을 보면 평평한 두 개의 바위가 보인다. 한 곳은 신선대 또는 신선바위, 신선암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러한 명칭인 붙여진 것은 옛날 이곳에서 신선들이 놀았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또 다른 너럭바위 위에는 망부석이라 이름 붙인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왜구에게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이 돌이 되었다고 한다.
영도등대와 신선대가 있는 이곳은 2005년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제17호로 지정했다.
태종사, 그리고 일본군 시설 |
태종사는 수국축제로 유명하다. 세계 각국의 수국을 수집해서 약 30종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태종대는 공립공원인데 개인 사찰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부산시에서 태종대를 유원지로 조성하기 이전인 1972년 창건했다고 한다.
태종사에는 대웅전, 산신각, 진신사리탑이라는 종교 의례 건물이 있다. 이중 진신사리탑 건물이 독특한 구조다. 입구에 들어서면 콘크리트 두께에 놀라게 된다. 다각형의 공간은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여러 개의 굴뚝이 만들어져 있다. 지하 벙커같이 견고하고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라는 느낌도 온다. 사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일본군의 군사시설이었다고 추정된다. 태종사 건너편에도 일본군의 군사시설로 짐작되는 시설물이 있다. 태종사에서 큰길로 나오면 편의점이 있고 그 뒤편에 위치한다.
‘숨비소리’가 뭐예요?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영도해녀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
해녀벽화거리를 지나며 해녀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표현한 벽화를 보게 된다. 해녀벽화거리를 지나오면 3층의 영도해녀문화전시관이 자태를 드러낸다.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은 해녀상이다. 해녀상은 제주도에서 제작하여 이곳에 기증했다고 한다. 제주도와 영도의 인연이 그만큼 깊다.
제주도의 해녀 문화는 201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층은 해녀촌이다. 멍게, 돌멍게, 소라, 해삼, 고동이 수족관에 가득하다. 그리고 2층은 전시관인데 천정에는 물질하는 해녀상이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 그 아래 물질하는 사진과 해녀들의 얼굴 사진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녀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영상실에서 볼 수 있게 해두었다.
영도에서 석양을 만나면 |
아침부터 영도 여행을 시작했다면 이제 해가 질 시간이다. 영도해녀문화전시관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서는 흰여울문화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해야한다. 흰여울문화마을의 시작이자 끝 지점인 흰여울전망대는 높은 절벽에 있다.
한국 최초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도 저 멀리 보인다. 해가 질 무렵에 이곳에 서 있다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큰 배들이 항구에 접안하지 않고 근처의 바다 위에 정박해있는데, 이것이 또한 장관이다. 이것을 묘박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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