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고수면 황산마을 정자

풍암정 만회당 오괴정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 입구입니다.

고창담양고속도로 남고창 IC로 진입해 고창군청으로 가다 보면

바로 만나는 곳이 고수면 소재지인 황산리인데요,

마을 뒷산이 누렁산이어서 한자로 황산(黃山)입니다.

마을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정려각과 우거진 노거수 사이에

정자가 2개 있어 마을의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마을은 1470년 경 남평문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지만, 정려각은 죽산안씨(竹山安氏) 정려각입니다.

효자증좌랑개건비(孝子贈佐郞改建碑)라는 비석과

그 뒤에 정려 현판이 있는데요,

효자 학생증 통훈대부호조좌랑 안건 안정 안형 안근 사형제지려

(孝子學生贈通訓大夫戶曹佐郞安建安廷安逈安近四兄弟之閭)’라 쓰여 있어

4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입니다.​

디지털 고창문화대전에 의하면 안건은

조선 후기 인물로 부친이 위독하자 동생들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부친을 살렸다고 합니다.

일문사효(一門四孝)로 칭송이 자자했으며 부모상에 예절을 다하고

삭망 성묘 때 전라감사 박기수가 음식을 보내

칭송할 정도로 효자였다고 합니다.

정조 임금이 갑자기 죽자 단을 세우고

3년 동안 제사일에 북쪽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는데요,

이에 고종이 1887년 4형제에 정려를 내린 것입니다.

4형제가 효도로 정려를 받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데요,

고창 고수면 황산리 마을 입구에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정려각 바로 옆은 정자 2개가 있는 나지막한 야산입니다.

도로에서 보면 황산마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야산 때문인데요,

야산을 굽어돌아가면 비로소 마을이 보일 정도이고

마을을 양손으로 감싼 형국이어서

야산 그 자체가 비보산(裨補山)이네요.

풍암정(豊嵓亭) 표지석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정자를 감싸고 있는 나무에 관한 표석석인데요,

1982년 보호수로 지정 당시 수령 200살인 느티나무가

수고 15m, 둘레 2.5m라고 쓰였습니다.

주변에 따로 보호수라는 안내문은 없는데요,

40여 년 전에는 보호수를 이렇게 표석석으로 세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산 아래서 올려다 본 풍암정입니다.

높이가 20m는 되어 보이는데요,

밑에서 올려봐도 풍치가 좋은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풍치가 좋을까요?

한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풍암정은 팔각형 정자입니다.

반반한 너럭바위 위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데요,

사각형 정자는 많이 봤어도 풍암정처럼

팔각형 정자는 참으로 오랜만에 봅니다.

정자 내에는 사각형으로 틀을 갖춘 마루방이 하나 있는데요,

문을 달아낸 흔적은 있어 과거에는 방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둥마다 주련도 각각 하나씩 있는데요,

모두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통 기둥 주련은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바깥쪽을 향하는데요,

마루 한가운데 앉아 있으면 주련 모두를 볼 수 있으니

풍암정을 세울 때 뭔가 계획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풍암정 내부에도 풍암정기 등

수많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풍암정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 1853~1939) 작품이라는데요,

편액 글씨 주인공들도 대부분 한말 일제강점기 풍암정을 찾은

시인 묵객들의 글씨로 보입니다.

1800년 경 황산에 살던 처사 안방성(安邦成)은

부친이 작고하자 산에 모시고 소나무를 심어 산이 푸르게 되었다는데요,

그래서 무송(撫松)이라는 당호를 짓고 바위 위에 올라 산을 둘러보고

들판을 굽어보며 풍년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에 증손자인 안홍수와 현손 안석필이

1862년 풍암 바위에 정자를 짓기 시작해

7개월 만에 완공했으며 여러 번 중수를 거쳐

2006년 정말 개축했다고 합니다.

풍암정 아래에도 너럭바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요,

만회당(晩悔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만회당은 1902년 죽산안씨 안영선(安暎善, 1824~1903)이

만년을 학문과 휴식을 겸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만년의 뉘우침, 잘못을 뉘우칠 줄 알고

또 뉘우친 것을 고치는 데에 뜻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1989년 이건 했다는데요,

대청마루 2칸과 기와지붕으로 되었습니다.

황산 등산 안내도도 있는데요,

능선 따라 안씨문중제각을 거쳐 봉산 입구까지

산책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풍암정과 만회당을 보고 죽산안씨 재실이

예지터 안쪽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중인데요,

곧 쓰러질 것 같은 정자와 표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둘레에 난간이 있고 연못만 있다면

풍류를 즐기기에 충분한 정자로 보이는데요,

과거에는 정말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

암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아 연못의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는데요,

거북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거북이 머리 부분에 정자를 세웠다고 합니다.

연못은 주변에 평촌문화마을이 생기면서 수로가 놓여

물이 말라버렸는데요, 정자 옆으로 너른 바위들이 있어

고인돌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창에는 워낙 많은 고인돌이 있고 기다란 바위만 보면

고인돌이지 않을까 유심히 보는 버릇도 생겼기 때문입니다.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바위에

오괴정(五槐亭)이라는 암각서가 보입니다.

예지터에 뿌리를 내린 죽산안씨 후손 중

괴정공 안국태(槐亭公 安國台, 1642~1703)가 정자를 짓고

오괴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선조가 심은 다섯 그루 느티나무가 마을에 있어

오괴정으로 부른 듯한데요,

건축연대는 1700연대이지만,

지붕이 60~70년대 흔히 보던 기와로 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후반 정도에 보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에는 오괴정 기적비와

처사 안복(安福), 안지(安祉) 안은 형제 유허비도 있습니다.

마을에 느티나무 5그루를 심은 형제라고 하는데요,

후손들의 외괴정과 마을 사랑 흔적이 역력합니다.

마을 끝자락에 죽산안씨 재실 구암재(龜巖齋)입니다.

소리 없이 뱀이 지나칠 정도로 숲도 무성하고 온통 주변은 밭인데요,

농사 일하면서 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실 옆에 큰 바위에도 글씨가 새겨있는데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풍화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고인돌 덮개돌 같기도 한데요,

너무 숲이 무성하고 뱀도 출몰하던 곳이라

더 이상 답사 불가입니다.

들녘에 벼가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빨라 아직 추수는 멀었는데요,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보니 '누런산'이라는 황산(黃山)은

풍암정에 올라 바라본 들녘이 풍요로울 때 짓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이름이 있든 없든 오래된 정자들을 찾아가는 것은

잠시나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보기 위함인데요,

내가 앉아있는 문턱에 그때 그분도 앉아

들녘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도 깊어가는데요,

고창에 오시면 풍암정, 만회당은

가볼 만한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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