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일 전
새하얀 침묵에 잠긴 '천안 광덕사'
겨울의 정적 감도는
산사(山寺)로의 여정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새하얀 침묵이 내리는 광덕산 자락
천년 세월을 품은 고찰 기와에 쌓이는 겨울의 속삭임
앙상한 가지 사이 흩날리는 눈송이는 시간의 흐름마저 멈춘 듯
고요함 속에 일상 속 번잡함을 잊고 산사의 평화를 전합니다.
칠백 년 호두나무 굽은 등처럼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광덕사에서
시간도, 마음도 잠시 멈추고 침묵에 잠깁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소복이 눈 쌓인 산사(山寺)는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산 자락의 광덕사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내며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며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운 듯합니다. 천안 광덕사(廣德寺)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자장(慈藏)이 창건하고 흥덕왕 때 진산 화상(珍山和尙)이 중건한 데 이어 조선 선조 때 희묵상인이 중창했는데 한때 3층 법당, 9종루 9범각, 80칸 장경각, 부속 암자 89곳을 거느리는 등 임진왜란 이전까지 경기·충청 호서(湖西) 일대 손꼽는 대찰로 사세를 떨쳤지만, 안타깝게 전란에 불타버리고 이후 대웅전과 천불전만 중건되었습니다.
전국 100대 명산으로 이름 놓은 광덕산에 접어들면 태화산광덕사(泰華山廣德寺)라 현판을 내건 일주문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일주문 천정을 보노라면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짜임만으로 채워진 전각의 내부와 화려한 단청에 압도됩니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후면 현판에는 과거의 영광을 대변하듯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이라 적혀 있습니다.
광덕사는 사세(寺勢)뿐 아니라 호두나무의 첫 재배지로도 유명합니다. 천안 명물 호두과자의 원료인 호두나무를 국내에서 처음 심은 것인데, 설화에 따르면 1290년(고려 충렬왕 16) 영밀공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충렬왕을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에 열매는 자신의 고향 집에 심었습니다. 광덕사 호두나무는 철재 지주대에 기대어 있지만, 높이 18.2m에 달하는데 지상 60㎝ 높이에서 두 갈래로 줄기가 갈라져 가슴 높이 둘레가 2.62m, 2.50m에 달합니다. 이 나무가 영밀공이 직접 심은 것인지 아니면 후손 나무인지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지만, 수령 400년 이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경내 진입은 보화루(普化樓)를 지나야 합니다. 학습공간인 보화루는 단청 문양이 유명한데 나란히 붙은 두루마리 책 두 권이 비스듬하게 사선 방향으로 배치되고 그 양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리본 장식이 S자 형태로 구부러진 모습입니다. 두루마리 안쪽에는 국화꽃 문양을 넣어 장식했고 리본 안쪽으로 파도 모양의 선을 그어 한쪽을 면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보화루 오른편 범종각에는 네발 달린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법고와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씩을 울리는 범종이 각각 매달려 있습니다.
이어 대웅전 앞 광장에 들어서면 소박한 삼층석탑(三層石塔)이 눈 속에서 더욱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이 석탑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무수한 눈비를 맞았을 것인데 그런데도 여전히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모습에서, 세월을 초월한 고찰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형식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옥개석(지붕처럼 덮은 돌)으로 마감한 높이 260㎝ 고려 시대 화강암 석탑입니다. 넓고 높은 지대석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 정방에 상륜부를 장식했는데 1985년 7월 19일 충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과거 문화유산 지정번호는 2021년 일괄 폐지됨)됐습니다.
기단부는 하층에 안상(眼象)이 둘리고 면석 위의 갑석(돌 위에 올려놓는 납작한 돌)은 약간 경사가 있습니다. 상층 기단은 1개 매석으로 만들었는데 탱주(면석 가운데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와 우주(면석 모퉁이에 세운 기둥)가 표현되지만, 상대갑석(上臺甲石) 귀퉁이 일부는 잘려나갔습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균형을 이루고 옥개나 옥신은 한 개 매석으로 결합 혹은 별도로 만들었는데 옥개석 층급 받침과 처마의 반전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각 몸돌은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고, 탑신 1층에는 문(門)모양 자물쇠를 새겨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 받침을 두고 윗면에는 급한 경사를, 네 귀퉁이는 위로 치켜져 올렸습니다. 마지막 상륜부에는 노반(머리 장식 받침)과 복발(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이 있는데 그 위의 보륜, 수연, 찰주 등 부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광덕사 삼층석탑은 넓은 지대석 위에 2층 기단부로 안정감과 탑신부 각 층이 균형을 이뤄 단순하지만 세련됨을 자랑합니다. 옥개받침이 4단씩 높아지도록 만들어 안정감을 주는데 전체적으로는 통일 신라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지만, 아래 기단의 기둥 장식이 생략되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시대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대웅전을 향하는 계단에는 양쪽으로 친근하고 독특한 모양의 돌사자상(충남도 문화재자료)이 좌우로 배치되어 암수 한 쌍으로 추정됩니다. 높이 80㎝ 크기에 별도의 받침돌 없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석사자는 머리 부분에 조각이 집중되고 몸통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수평을 이뤄 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로, 사람과 유사한 모습인데 입은 약간 벌려 이빨이 표현되지만, 사실적 묘사는 다소 부족합니다. 구름무늬 모양의 머리털이 도식화되어 표현되었는데 앞다리는 땅을 지탱하고, 뒷다리는 돋을새김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꼬리는 짧은 선으로 간략히 표현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해 세부적 표현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조선 조각기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원래 보화루 계단에 있었는데 여러 차례 도난에 시달리다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목탁 소리와 경전을 읽는 스님의 차분한 음성이 공간을 채우고 합장으로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조용한 마음이 함께 울려 퍼집니다. 법회가 끝나기를 기다려 법당 안에 들어서니 바깥세상은 차가운 겨울이었지만, 안의 공기는 따뜻함과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광덕사 대웅전(충남도 문화유산)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입니다. 맞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 지붕으로, 지붕과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배치한 다포 양식이 채택되었습니다. 잘 다듬어진 긴 받침돌로 만든 기단 위에 기둥 자리를 조각한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측면 중앙 기둥만 사각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을 통해 조선 후기 사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는 나무 대좌 위에 목조 석가여래를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여래, 우측에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17세기 목조불 양식을 따르면서 타원형의 얼굴에 양감이 없는 평면적 이목구비가 특징입니다. 친근한 인상의 상호와 상대적으로 유연하면서 두께감 있는 옷 주름 등에서 독창적 조각기법이 특징인데 발원문과 복장물이 남아 있어 1728년의 정확한 제작연도와 수 조각승 취단을 비롯해 보조화승인 명청, 의체, 순명 등이 참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불탱화로 삼세불가 제작되었는데 삼세불은 약사여래(과거 동방) 석가여래(현재) 아미타여래(미래 서방)을 뜻하는 시공간적인 삼세의 부처입니다. 광덕사 대웅전에는 마(麻) 바탕에 채색화로 약사여래(약사회상도), 석가여래(영산회상도), 아미타여래(아미타회상도) 등 3폭이 그려졌는데 안타깝게 1991년 약사회상도가 도난되어 영산회상도와 아마타회상도 2점만 대웅전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화기(畵記)에는 ‘건륭 6년(1741년 영조 17)’의 정확한 제작연도와 참여한 화원(畵元)으로 붕우(鵬友) 사혜(思惠), 인찰(印察)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명부전에는 소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29점(충남도 유형문화유산)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1728년부터 2년 동안 조각승 취단이 조성했습니다. 지장보살삼존과 시왕을 비롯해, 동자, 판관, 귀왕, 사자, 금강역사 등 일체의 권속이 남아 있는데 이처럼 18세기 조성된 명부전 존상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이며 제작자의 이름이 밝혀져 불교 미술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명부전 뒤편의 노사나괘불전은 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 국가지정문화유산)을 모시는 곳입니다. 괘불은 절에서 법회 등 큰 행사를 열 때 법당 앞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화로 광덕사 노사나불괘불탱은 머리에 보관을 쓴 노사나불을 다른 형상보다 크게 중앙에 배치하고 어깨 양쪽에는 2대 제자가, 그 아래쪽으로는 2대 보살이, 둘레에는 사천왕을 그려 넣었습니다. 본존은 타원형 얼굴에 둥근 머리 광배에 작은 부처 7분을 표현하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양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양인데 붉은색 옷과 매듭, 옷깃의 둥근 장식 등이 어우러지고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배경에는 군데군데 구름을 그려 넣어 밝고 선명한 채색과 더불어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천안 광덕사는 조선 시대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광덕사 조선사경(廣德寺 朝鮮寫經. 국기지정문화유산)의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이를 갚기 위해 공양과 경전을 읽고 외울 것을 권장하는데 다른 경전과 달리 각 내용에 따른 그림이 포함된 것이 특징으로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과 가족들이 시주해 만든 책입니다.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부처의 힘을 빌리거나 수행을 통해 모든 죄악을 없애고 장수하는 가르침입니다. 사경은 불경의 내용을 옮기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꾸민 것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왕실로부터 잡역도 경감받는데 1457년 세조는 온양온천을 다녀오다 광덕사에 들러 위전(절의 유지를 위한 토지)를 하사하고, 직접 자필로 서명한 감역교지(국가지정문화유산)를 내립니다. 광덕사 감역교지는 원래 1쪽이었지만, 후일 이를 3쪽으로 잘라 표지를 청색 비단으로 감싸고는 어필(임금의 글)을 붙였습니다.
대웅전 오른편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천불전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었는데 현재의 천불전은 1975년 옛 전각을 모두 해체 복원한 것입니다. 전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모두 있는 다포 양식입니다. 전각 내부에는 목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존자를 봉안했는데 세 가지 불상 뒤로는 천불이 그려진 탱화 3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탱화는 광덕사의 사적기가 제작된 1680년(조선 숙종 6) 당시에도 오래된 듯 보였다고 전해져 그 이전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 1999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광덕사는 사찰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질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특히 광덕산 설경은 겨울 사찰의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드는데 사찰 뒤편으로 이어진 눈 덮인 산길을 걷다 보면,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눈 밟는 소리뿐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자국이 새겨지고, 그 위로 가만히 눈이 내려 다시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모든 기록을 허용하지 않듯이 시간도, 마음도 멈춰 침묵에 잠깁니다.
천안 광덕사
○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사길 26 광덕사
○ 문의 : 041-567-0050
○ 운영 : 연중무휴(일몰 후 출입제한)
○ 입장료 주차장 : 무료
* 취재일 : 2025년 2월 3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휘리릭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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