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시간 전
순교자들이 세운 '서산 해미순교성지'
교황청이 국제성지로 승인한
서산 해미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10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서산 해미순교성지가 있습니다.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 민간 신앙으로 자리할 때 조선의 유교 정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신자가 박해받으며 순교하였습니다.
해미 지역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 1811년~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 등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었지만,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남겨진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가
1932년 서산 성당에 부임한 프랑스 출신 범바로(P. Barraux, 1903~1946)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책
성지 앞에 생명의 책이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 해미순교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 전한 메시지를 새긴 조형물이며,
책 가운데 서 있는 나무는 호야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로
해미읍성 옥 앞에서 지금도 자라고 있는 나무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해미읍성 옥사 앞에 서 있는 호야나무에 천주교 신자들을 철삿줄로 묶어 매달아 고문하거나 교수하였습니다.
이를 직접 경험한 이 나무는 충남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입구에 해미순교성지라고 새긴 큰 돌을 세워져 있습니다.
대강당 앞에는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위에 맞배지붕을 얹은 문에 해미 순교자 국제성지 현판을 걸었으며,
사찰의 일주문과 유사한 형태를 하였습니다.
문 뒤에는 둥근 형태의 대강당과 함께 두 팔을 벌린 모습의 예수 성심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강당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은 성벽과 흡사하고, 성문을 연상시키는 대강당 문과 그 위의 다각면 지붕은
건축 양식을 감안한 형태로 해미 읍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름 없는 집
성지 안으로 들어서면 이름 없는 집이 제일 먼저 마중합니다.
이곳은 무명의 순교자들을 떠올리며 하느님 말씀을 되새기기 위하여 성경 이어쓰기를 하는 곳으로,
누구나 이 안으로 들어가 필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의 의미
강당(중앙)은 청소년 회관(좌)과 이어져 있고, 옆으로 망루(우)가 우뚝 서 있으며, 그 앞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은 사제관입니다.
강당은 생매장한 구덩이 근처에 건립하였는데, 구덩이를 상징하여 원형으로 건축하였고,
망루는 진복팔단(마태복음 5장 3절 이하에 있는 예수의 산상 설교 속의 말로 여덟 가지 행복)을 말씀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팔각 모양의 파수대를 표현한 탑으로, 종탑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입상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해미순교성지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입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앞에서 집전할 때 순교자 124위 시복식도 함께 열렸는데,
여기에서 해미 순교자인 인언민 마르티노, 김진후 비오, 이보현 프란치스코의 3위가 함께 시복되었으며,
특히 김진후 비오는 김대건 신부의 증주보입니다.
시복이란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강당
강당의 1층은 소강당입니다.
원형의 내부 벽에는 한옥의 창호를 본떠 띠살문을 설치하고, 살문에는 천주학쟁이들을 처형하는 장면의 그림을 걸었으며,
십자가 뒤의 제대 뒷벽은 불에 구운 도자기 조각으로 모자이크하여 수많은 무명 순교자을 표현하였습니다.
대강당
2층으로 올라가면 해미읍성의 문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대문은 있는데,
대강당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자비의 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강당은 소강당보다 규모가 큽니다.
형태도 같아 보이지만, 가만히 둘러보면
창호 위에 겹처마를 설치하여 한옥의 멋을 살리고 있습니다.
기념관
강당을 내려와 건물 뒤로 돌아서면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는데,
순교 기록화와 벽화가 설치되어 있고, 발굴된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시복 기념비
인언민 마르티노(1737~1800), 이보현 프란치스코(1773~1800), 김진후 비오(1739~1814)의 시복 기념비입니다.
시복이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복자 칭호를 부여하는 교황의 선언입니다.
기념비 뒷면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해미 순교 복자 3인의 기념비를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해 터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우연히 유해를 발견하였으며,
이후 범 베드로 신부가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을 발굴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하여 오다가,
1995년 순교자 대축일에 원래의 순교 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하였습니다.
여숫골
예수 마리아라고 부르는 기도 소리가 여수 머리(여우 머리)로 들린 주민들이 이곳을 여숫골이라 하였답니다.
자리개 돌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 위에 놓여 있던 돌다리로, 2009년에 생매장 순교지인 여숫골로 옮겨 보존하고 있습니다.
자리개 질이란 곡식 단을 묶어서 타작하는 것을 말하는데,
군인 두 명 내지 네 명이 신자의 팔다리를 잡고 높이 들었다가 세차게 돌다리 위에 패대기쳐 가슴과 머리가 으스러져 죽이는 방법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이처럼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였다고 합니다.
진둠벙
천주교인들의 팔을 묶고 커다란 바위를 등에 지운 뒤, 물속에 거꾸로 빠뜨려 산 채로 익사시켜 수장하였는데,
사학 죄인들이 빠져 죽던 이 둠벙을 당시 사람들은 죄인 둠벙이라 불렀으며, 죄인 둠벙이란 말은 진둠벙으로 변했습니다.
노천 성당
진둠벙 맞은편에 노천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의자를 대신하여 커다란 돌덩이가 놓여 있습니다.
사학 죄인들의 등에 지어진 돌덩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무명 순교자 묘
노천 성당을 지나면 여러가지 건축물과 조형물을 갖춘 넓은 잔디밭 광장이 있습니다.
팔작지붕의 야외 제대(좌)와 그 앞에 3인의 복자상이 있고,
오른쪽으로 높게 세워져 있는 순교탑과 그 앞에 무명 순교자 묘(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가만 바라보면,
종교를 떠나
고요하고도 엄숙함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서산 해미순교성지(국제성지)
○ 주소: 충남 서산시 성지1로 13
○ 운영시간: 상시 개방
○ 미사시간: 매일 오전 11시(단, 월요일은 미사 없음)
○ 주차 가능
○ 입장료 없음
* 취재일자: 2025년 2월 24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지금 즉시 출발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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