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 공간

전주 기린봉과 견훤 왕궁지 탐사


기린봉은 사신중 두 번째 신 우백호에 해당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도 하며 전주 근교의 아름다운 열개의 풍광을 일컫는 전주 십경가운데 한나인 기린 토원으로서 동쪽 기린봉위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달은 전주의 첫 번째가는 경관으로 꼽힙니다.


# 주변 가볼만한 곳

동고사, 선린사, 견훤왕궁터, 동고산성, 치명자성지, 승암산

전주 자연생태박물관, 한벽당, 아중저수지, 아중체련공원


해발 271m, 기린봉의 최정상입니다.

기린토

성군이 이 세상에 나올 전조로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을 뜻하는 기린봉이 후백제의 왕 견훤의 왕궁터를 잡아주었습니다. 이고장 상서로움의 뜻을 지닌 기린봉은 전주 십경중 제일경으로 동쪽 기린봉위로 진주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달을 첫째가는 경관으로 꼽은 것입니다. 신성한 산에 정갈한 마음으로 우리모두 명산으로 가꾸고 사랑했으면 합니다.

백년만의 단죄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두황

이두황 단죄비

정의가 불의에 역으로 청산 당하고 민족을 배반한 세력들이 역사의 주인노릇을 한 나라 매국매족의 후예들이 아직도 역사를 분탕 잘하는 나라 보국안민 척왜 양창의 갑오년 동학 농민군의 비원과 국권 침탈에 맞섰던 한일 의병들의 힘을 모아 100년 세월 호남의 수부 전주 시가지를 바라보며 기린봉 아래에 고이 잠들어 있는 역사와 민족의 죄인 충량한 황국 신민 이두황을 깨웁니다.

이두황은 (1858~1916)서울 출생으로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죽전부사 및 장위 영영관 양호도순 우영 우선봉장으로 임명되어 옥천 세성산 서산 유구 해미 논산 황화대 전주 원평 태인 장흥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전투에서 동학 농민군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진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특히 보은 장내리의 민가 수백채를 불사르고 장흥에서는 동학 농민군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을 전개 하였으며 논산 황화대 전투에서는 동학 농민군의 시체가 눈에 걸리고 발에 챈다고 진중 일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의 작전명 여우 사냥으로 불렀던 명성 왕후 살해 사건에 훈련대 1대대장으로 우범선 이진호 이주희등과 함께 조선인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여하여 범죄 행각에 가담하였습니다. 사건직후 일본으로 도주했던 이두황은 이또 히로부미의 비호아래 중추원 부찬의로 화려하게 복귀 하였고 1908년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이른바 일본의 남한 대토벌로 불리던 호남지역 의병 운동을 초토화 시키는데 적극 앞장섰습니다.

1910년부터 1916년 사망할때까지 전라북도 도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 하수인으로 복무하였고 재임중 지방 토지 조사위원장을 겸임하며 일제의 토지 수탈에 협력하였습니다. 일제는 이런 이두황에게 한국 병합 기념장 일본 적십자사 조선 본부 유공장 일본 천황 즉위기념 대례 기념장 훈 3등 서보장 등을 수여 하였습니다. 이두황 사후 100년 역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 단죄비를 세웁니다.

※ 출처: 2026년 3월 13일 민족 문제 연구소 전북지부 '이두황 단죄비'

우금치 전투

우금치 전투는 일본군의 지휘아래 조선관군의 일방적인 대량 학살 이라고 합니다. 이때 활약한 조선 장수가 이규태 이두황 이범호인데 이규태는 훗날 항일 의병장이 되고 이두황과 이범호는 반민족 친일계가 됩니다. 동학농민 피해자는 기록마다 다른데 최소 20만에서 40만이라고 합니다. 이두황은 호남지방의 동학 농민들을 완전 색출하여 잔혹하게 학살했다고 하는데 심지어 사람 뼈에서 살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도 가했다고 합니다. 이두황의 잔혹함은 일본군에서 조차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전주 군경 묘지

전주 군경 묘지는 6.25 전쟁당시 국가를 수호하다 전사한 군인들과 경찰들을 안치하고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 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낙수정이라는 누정이 있어 낙수정 군경묘지로 불렸으나 현재 낙수정이 사라져 기존 명칭에 대한 의미가 없어짐에 따라 전주 군경 묘지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단군 성전 성불사 (동고산성) 가는길▼

동고산성 7건물지

이 건물지는 동고 산성의 남익성 동편 능선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16칸 측면4칸 길이 35.2m 넓이 8.8m이다 건물의 4면에는 차양칸이 둘러져 있으며 차양칸 초석은 줄기초로써 폭은 1.00m에서 1.2m이다 줄기초 밖으로는 지대석이 보강 되었으며 건물의 기단부에서 기와편이 다량 출토 되었습니다.

남고산성 내의 남고진터로 알려져 있는 계곡 주위에는 평탄대지와 석축과 우물 등이 남아있습니다. 평탄대지에서는 초석과 기단석 등의 석재와 궁(宮), 관(官)자가 새겨진 후백제 기와가 수습되고 있어 후백제 행궁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추정 행궁지의 남쪽에는 반월형의 갈대숲이 자리하는데 행궁과 관련된 연못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고산성은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와 함께 성 내부에서 13동 이상의 건물지가 확인 되었습니다. 조사된 유구와 출토된 다양한 후백제 기와 등을 통해 볼 때 가장 확실한 후백제 산성으로 여겨집니다. 기린봉의 동쪽인 아중 저수지 주변에서는 왕릉급의 무덤과 돌을 사용한 무덤들이 확인되었습니다.

무릉마을 내 아중산장 뒷산의 정상부에 자리한 무릉 고분은 외관상 산의 형태인데 마을 주민에 의하면 고분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민묘를 이장하기 위해 땅을 팠을 때 다량의 숯이 깔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이 숯은 고분의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도 추정되며, 봉분의 규모로 본다면 왕릉급에 해당합니다.

동고사는 신라 헌강왕 2년에 승려 도선이 지금의 절보다 위쪽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전주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동고사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 졌는데 헌종 10년에 승려 하주가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본래의 이름을 따서 동고사라 하였습니다.

1946년에 대웅전등을 새로지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동고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935년에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후 불교에 귀의한 둘째 왕자가 나라 잃은 설음을 달래며 아버지와 어머니 마의태자등 다섯 사람의 모습을 나무에 새겨 이절에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부대왕절 또는 진불대왕절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김부대왕의 김부는 신라 경순왕의 이름)

치명자산 성지

치명자산 정산의 순교자 가족묘 십자가 오른쪽에는 태고쩍부터 천연기암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산에 순교자 가족들을 모심 순교자들의 거룩한 신앙을 기리기 위하여 이 묘지를 찾는 신자들의 발걸음이 새벽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듯이 이 천연기암은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명자산 성지 이곳은 예부터 승암산이라 불렀는데 산정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으로 더 불리고 있다 호남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선교자 영입과 서양 선진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누와 그의 부인 신희 동정 부부로 순결한 큰아들 유종찰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 제수 이옥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등 일곱분의 순교자가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유항검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중성 다섯분은 2014년 8월 16일 복자의 품위에 오르셨고 나머지 두분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딸 동정녀 유섬이

복자 유한검 아우구스티노의 일가족은 1801년 신유 박해때 순교치명 하였고 당시 사형이 금지된 어린자녀 유성이(9살) 유일석(6살) 유일문(3살)은 각각 거제도 흑산도 신지도로 유배 되었습니다. 2014년 교회사가 하성태 선생은 사헌 유집의 유성이에 관한 기록을 연구하여 큰딸 유성이가 거제도에 유배되어 평생 동정녀로 순교자적 삶을 살다가 1863년 71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음을 세상에 밝혔습니다. 2015년 5월 경남 거제군 거제면 내간리 송곡마을 산방산에서 유처자 묘가 발견되었습니다. 2019년 1월 22일 치명자산 성지 봉사자들과 강학 회원들은 거제도 유성이 묘소를 순례하고 묘토석을 수습하여 이곳에 엄숙히 합토하였습니다.

산상성당미사

매주 화목 오후 3시 주일 오후 3시 주일미사

순레자 미사안내 평화의 전당 1층 9보두네홀) 매일 11시

산상성당 오른편에 위치한 순교자 기념성당 전시관에서는 치명자 성지의 역사를 볼수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주시 전경



글, 사진= 문강주 기자 / 최성용 기자

글 참고 = 두산백과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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