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공감 12월 [Vol.141]

창녕군 영산면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이를 방어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다.

창녕 영산읍성은 임진왜란 당시 주변의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영산읍성지를 찾았다.

한반도 남쪽 방어선의 거점, 영산읍성

창녕군 영산면에 자리한 영산읍성은 조선 성종 8년(1477년)에 축조된 성곽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동시에 지역 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영산읍성은 한반도 남쪽 방어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김미정 학예연구사는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는 서문루를 안내하며, 자연스럽게 영산읍성에 관해 설명했다. “영산읍성은 배 모양을 띤 읍성으로 배 주(舟)자를 써 주형(舟形)이라고 하지요. 이 지역은 해안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 성을 쌓아 왜구의 침략에 대비했답니다.”

성벽의 둘레는 1513m, 높이는 최대 4m, 성벽 너비는 최대 7m에 이른단다.

현재 읍성의 성벽은 대부분 주택의 담장이나 도로, 경작지의 축대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외벽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쪽에 반원형의 옹성을 두른 문터 3곳이 남아있고, 물을 들여오고 흘려보내는 수구(水口)가 2곳이 있다.

“당시 읍성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지역의 관리들이 머물면서 민생을 다스리고 전시에는 군사 기지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벽을 쌓을 때 외곽의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에 더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어요.”

김 학예사의 설명을 듣고 읍성을 다시보니 성곽의 위엄이 새삼 다가온다. 성벽의 높낮이와 굽은 선은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품어왔을 듯하다.

임진왜란과 곽재우 장군의 발자취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산읍성은 또 다른 역사의 장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곳은 곽재우 장군이 활약했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곽재우 장군은 붉은 옷을 입고 왜군과 맞서 싸워 ‘홍의장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 함께 싸웠죠. 이때 곽재우 장군이 영산읍성에서 의병들과 함께 왜군과 전쟁을 벌이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주민들을 보호했었습니다.”

이처럼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을 중심으로 왜군을 막는 데 활용된 영산읍성지는 성의 역사와 보전 가치가 인정되어 1983년 8월 경상남도 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었다.

성곽 보존 체계적인 연구… 국가사적 지정 추진

영산읍성은 2025년 사적 예비 문화유산 조사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이는 성곽을 보존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지난 1998년과 2005년 2차례의 정밀지표조사와 지속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영산읍성의 성벽, 내부 건물지, 유물 등을 확인했어요.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연구와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해 국가사적 승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창녕군은 1999년부터 영산읍성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자연재해로 부서진 장벽을 정비하는 등 사후관리에도 힘썼다.

“주민들이 성벽 일부를 집의 담장으로 사용해 원형이 잘 유지된 게 기적 같은 일이죠. 더불어 창녕군의 노력도 보탬이 됐고요. 이렇게 잘 보존된 성벽을 더 깊이 연구하고 보존할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창녕군은 2025년 사적 예비 문화유산 조사지원 공모사업으로 영산읍성의 역사적 가치와 미래의 보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영산읍성에 스며 있는 세월의 깊이는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되어주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전승되고 지켜질지에 대한 기대감도 품게 해준다.

창녕 영산읍성지 주변 국가유산은 무엇이 있을까?

창녕 영산 만년교 (昌寧 靈山 萬年橋) 보물 제564호

창녕 영산 만년교는 호국 공원 안에 있는 길이 13.5m, 너비 3m의 무지개다리이다. 만년교는 만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다리라는 뜻이다. 다리 사이로 흐르는 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고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하며, 다리를 놓은 고을 원님의 공덕을 기르는 뜻에서 ‘원(院)다리’라고도 부른다. 정조 4년(1780년)에 석공 백진기가 처음 다리를 만들었고 고종 29년(1892년) 현감 신관조가 석수 김내경을 시켜서 중수했다.

창녕군 영산면 동리 433

창녕 영산 석빙고 (昌寧 靈山 石氷庫) 보물 제1739호

석빙고는 봄·여름에 사용할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다. 겨울에 강이나 하천에서 깨끗한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였다. 석빙고 얼음은 일반 백성은 쓰지 못하고 양반이나 관에서 썼다.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는 모두 경상도 지역에 있는데 조선시대에 만든 것이다.

창녕 영산 석빙고는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른 석빙고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원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창녕군 영산면 교리 410-2번지

info

창녕 영산읍성지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 교리, 동리, 서리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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