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청풍문화유산단지는

남한강변에 위치한 청풍은 금수산과 비봉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남한강 주변으로 많은 문화 유적지와 고가들이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청풍면 소재지가 있던 읍리와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를 현재의 장소인 물태리에 이전 장소를 마련하여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복원해 단지를 조성하였습니다.

단지 안에는 향교를 비롯하여 청풍부 관아인 금병헌, 팔영루, 금남루, 응청각, 한벽루와 청풍 석조여래입상,

민가 4채(지곡리 고가, 후산리 고가, 황석리 고가, 도화리 고가)를 그대로 옮겨와 복원하였고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단지 한쪽에 마련된 석물군에는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으며

그 외 성혈이나 고인돌, 문인석 등이 석물 군 안에 있습니다.

주변 관광지로는 비봉산을 오르내리는 청풍호반케이블카, 옥순봉 출렁다리, 능강구곡, 금수산, 용담폭포 등이 있습니다.

팔영루 좌측 편에 있는 건물이 청풍문화재단지 매표소입니다.

입장 요금표입니다. 이곳에서 매표 후 팔영루에서 검표 후 팔영루 문을 통하여 입장 하면 됩니다.

▪개인(어른) : 3,000원 ▪개인(청소년,군인) : 2,000원 ▪개인(어린이) : 1,000원

▪단체(어른) : 2,500원 ▪단체(청소년,군인) : 1,500원 ▪단체(어린이) : 800원

제천 청풍 팔영루 堤川 淸風 八詠樓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

이곳은 청풍 부를 출입하는 관문이다.'현덕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종 7년(1870)에 세운 '팔영루사적비'에 의하면,

숙종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중건하고 현덕문이라 한 것을,

고종 7년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다.

그 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 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읍리 286번지의 청풍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4각의 문을 내고 문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락집을 세웠다.

-현지안내문-

팔영루를 지나 입장을 하면 우측 편으로 먼저 보이는 곳이 연자방아입니다.

연자방아가 있는 곳에 모여 있는 민가 4채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석리 고가(黃石里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황석리 고가는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옛집으로 초가집인 문간채와 일자형의 안채, 기와를 올린 화장실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의 왼쪽 부엌 앞에는 작은 뒤주를 두었는데, 곡물이나 먹거리 등을 저장한 공간으로 보인다.

3칸의 방은 한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방과 방 사이에 문을 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 시골 양반집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지안내문-

도화리고가(桃花里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이 집은 청풍면 도화리에 있던 집으로 지금의 살림 채는 ㄷ자형이지만 앞쪽에 일자형 건물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트여있는 ㅁ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동쪽 방 2칸은 사이에 장지문을 설치하여 한 개의 방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 집은 방 사이에 장지문을 설치하여 한 개의 방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나 이 집은 방 사이에 벽을 설치하고 문을 달았는데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지안내문-

후산리 고가(後山里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후산리 고가는 청풍면 후산리에 있었던 옛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다.

안방 위에 수납공간인 윗방을 둔 점과 마루 한구석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제사 방을 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기둥 위를 잇는 큰 나무와 지붕이 만나는 꼭대기 사이를 받친 나무가 이 집의 독특한 부분이다.

후산리 고가는 평면과 가구 형식 등에서 조선 시대 제천의 부유한 농민 집의 건축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지안내문-

지곡리 고가(池谷里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

지곡리 고가는 청풍면 지곡리에 있던 옛집이다.

부엌 앞에는 식료품이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두는 고방이 있고,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벽과 문에 판자를 둘렀다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 기와를 올린 문과 담장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경계를 구분한 것은 이 지역의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충주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지안내문-

※현지안내문에는 지곡리 고가는 청풍면 지곡리에 있던 옛집이라고 쓰여있는데,

지곡리 고가는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고가입니다.

지곡리 고가는 어릴 적 내가 자란 바로 옆 동네에 있었고

종친의 집이기도 하고 또 친구가 살던 집이라 더욱 감회가 새록새록 하더군요.

부엌과 장독대는 어머니의 전용공간이라 어머니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고 직접 장을 담아 장독에 두고서 부엌과 장독대를 오가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대가족을 건사하셨습니다.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勿台里石造如來立像)

석조여래입상이란 돌로 만든 서 있는 불상을 말한다.

제천 청풍면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긴 기둥 모양의 거대한 불상으로,

통일신라 말기 불상과 비슷한 당당한 느낌의 어깨, 형식화된 목의 주름, 사실적이지 않은 손 등에서

고려 초인 10세기 무렵 작품의 특징이 드러난다.

연꽃이 새겨진 팔각의 대좌 위에 부처의 발을 조각하였는데, 청양 읍내리 석조 여래 삼존입상과 기법이 비슷하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1985년 청풍 문화유산 단지로 자리를 옮겼다.

-현지안내문-

제천 청풍 금남루(堤川 淸風 錦南樓)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금남루는 조선 순조 25년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에 부사 이직현이 고쳤다.

금남루는 청풍면 읍리의 청풍초등학교 교문으로 사용되다가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5년에 다른 관아 건물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층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러 멀리 있는 적의 상황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조길원이 적은 도호부절제아문 현판을 통해 이 건물이 도호부 관청의 정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누각은 도호부라는 글자가 남겨진 유일한 건물이다.

-현지안내문-

제천 청풍 금병헌(堤川 淸風 錦屛軒)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금병헌은 숙종 7년에 청풍 부사 오도일이 지은 관청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명월정 이었으나 영조 2년에 청풍 부사 박필문이 다시 지으면서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죄인을 가두었던 감옥인 부속 건물은 조선 말기에 없어졌고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지안내문-

제천 청풍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90호]

응청각은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중 하나로 손님이 머물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명종 초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란 이름을 지었고

인조 15년에 충청감사 정세규가 응청각에서 묵었다는 일기가 남아있다.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듯하고, 2층은 원래 방이 있는 누각이었다.

응청각이 한벽루 서쪽에 있으며 한벽루처럼 아름답다는 기록이 있다.

충주댐 공사 때문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현지안내문-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충숙왕 4년에 청풍현 출신 승려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누각이다.

본채 옆에 작은 부속 채가 딸려있는 형태로,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조선 시대 누각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꼽힌다.

한벽루에서 보는 경치는 매우 빼어나서 조선 시대의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한시와 그림을 여러 편 남겼다.

1972년 8월에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모두 떠내려가서 1975년에 본래 모습대로 다시 지었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 문화유산단지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현지안내문-

석물군(石物群)

수몰 이전 옛 청풍, 수산, 덕산, 한수지역에 산재 되어온 고대 사회의 장의 풍속 무덤인

지석묘 5점과 문인석 6점 그리고 도호부 시대 군수와 부사의 숭덕비, 공덕비, 선정비 32점과

제천향교 경내에 보존하던 역대 관찰사, 현감 군수의 치적, 공적비 10점 등 총 42점을 이곳에 배치하여

남한강변의 거석문화에 대한 변천과 당시 인물의 공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현지안내문-

한벽루 뒤편에는 포토존이 있습니다.

금수산과 청풍호를 배경으로 멋진 인증샷을 담을 수 있습니다.

산꼭대기 망월 산성에 올라가면 넓은 청풍호와 비단을 두른 금수산의 멋진 풍경들을 눈에 담고 사진에 담아가실 수 있습니다.

더 높은 곳에서 청풍호와 금수산을 보고 싶으면 근처에 비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청풍호반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비봉산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청풍에 오면 직접 한번 올라가서 만나보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제7기 충북 누리소통망 서포터즈

강문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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