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홍주읍성 안에 있는 홍주성 역사관에서는

6월 24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구한말 대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지산 김복한 선생의 서거 10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홍성군은 유명한 인물이 워낙 많은 지역이라서

지산 김복한 선생님의 이름이 생소한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번 주말은 홍주성역사관 방문하셔서 홍성 출신 인물을 조명하는

첫 전시 '100년을 기다린 바람, 지산 김복한' 만나보고 가세요.

홍주성 조양문에 광복 79년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걸린 걸 보니 더 가슴이 숙연해집니다.

홍성군은 조선시대 '홍주'로 불렸으며 홍주를 지키던 홍주성에는

3개의 문이 있었는데 사진에 문은 동문인 조양문으로

조선시대 홍주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을사오적(1905년) 당시

홍주 의병들이 조양문에서 항쟁을 벌였던 역사적 사건의 무대여서

대한민국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홍주성에 가시면 꼭 보고 가야 하는 명소 소개해 드리면

관아의 입구인 홍주아문과 안회당, 여하정,

그리고 홍주성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홍주성역사관입니다

홍주성 역사관은 운영 안내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평일 09:00~18:00/토·일·공휴일 09:00~18:00

동절기(11월~2월), 평일 09:00~17:00/토·일·공휴일 09:00~17:00

휴일 안내: 1월 1일(신정), 설날, 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입니다

홍주성 역사관에는 홍주성의 역사부터 조선시대 홍성의 모습까지

다양한 전시를 보실 수 있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특별 기획실에서 열리는

지산 김복한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과 독립운동 활동상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 소개입니다.

입구에는 김복한 선생의 연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자는 원오(元五), 호는 지산(志山)으로 1860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에서 태어나셨으며

1892년(고종 29)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교리·사서·대사성·승지 등을 역임했으며

순종 황제로 즉위하는 세자를 교육하는 서연관에 발탁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안동 김씨 수북공파 가문 출신인 김복한 선생은 어려서부터

남당 한원진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아 남당학파의 대표 유학자가 되셨습니다.

전시물 중에는 기획전이 아니면 보기 힘든 안동김씨세보,

김광현세첩과 생가터에 남아있는 비석 사진 등을 보실 수 있어요.

지산 김복한은 6세에 부친이 죽고 다음 해 모친이 죽으면서

고아가 되었지만 종조부의 도움으로 글을 읽혔다고 합니다,

12세에 남당 한원진 이후 남당학의 계보를 잇는 이돈필 문하에서

수학을 하며 내종형인 복함 이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남당학파를 이끄는 유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복한 선생은 1892년(고종 29)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교리·사서·대사성·승지 등을 역임했으나

1894년 6월 갑오개혁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 홍주로 내려와

인재를 양성하던 중 홍주의병에 참여하면서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홍주의병은 홍성과 인근 지방 유림들의 지도하에

1차 의병인 1895년 을미의병과 2차 의병인 1906년 병오항일의병을 말합니다.

제1차 홍주의병은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의 단발령에 대한 반발로

홍주 지역 유생들과 정산과 청양의 의병들이 합류하면서 창의소가 설치되었고

총수에 김복한이 추대되었으나 당시 홍주부관찰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체포되셨습니다.

전시물 중에는 홍주부목사 이승우를 설득하기 위한 간찰, 김복한 의병장 통문 등을 보실 수 있어요.

김복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죄상과

벌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으나

이듬해인 1906년 민종식과 홍주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지금도 홍주의사총에는 홍주의병으로 돌아가신 많은 의병들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1907년 공주 감옥에서 석방 후 선생님은 서부면 이호리 산수동에 정착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여생을 보내시던 중 1919년 유림 대표 137인 증 한 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발송하였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셨습니다.

정부는 1963년 지산 김복한 선생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하였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홍주의병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파리강화회의에 유림대표로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 실정을 밝힌

독립청원서를 작성해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한 지산 김복한 선생 특별전 소개해 드렸습니다.

홍주성역사관에서는 9월 11일 파리장서운동에 대해 강좌를 연다고 하니 많이 오셔서 선생님의 큰 뜻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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