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풍산읍 소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청원루 다녀왔어요.

청원루는 본래 김번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20년에 지은 집이었는데요.

병자호란 때 예조판서를 지냈던 김상헌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면서

본래 있던 건물을 누각으로 고쳐 짓고,

청원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잘 정비된 담장 너머로 청원루가 보이는데요.

안타깝게도 소나무 한 그루는 고사한듯했어요.

다행히 반대쪽 담장 너머의 소나무는

초록 가득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청원리 대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했어요.

안내판에 따르면 누각으로 고쳐 지은 김상헌은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청나라와 화해를 하자는

굴욕적인 의견에 반대했어요.

그러다가 청나라 심양에 끌려가

6년간 인질로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청나라를 멀리한다'라는 뜻으로

'청원루'라 이름 지었다고 해요.

예쁜 이름과는 달리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었네요.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대칭이 잘 된 멋진 누각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몸채 부분은 기단을 높게 한

단층 다락집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어요.

지금은 한 채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두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해요.

1934년 홍수가 나서 한 채가 허물어지고,

현재 청원루만 남았다고 합니다.

청원루 마당 한쪽에는

김상현의 충의가 가노라 삼각산아 시조가

시비로 세워져 있어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 올동말동하여라

정말 많이 들었던 시조였는데,

그 시조를 지은 분의 누각이라니

기분이 새로웠답니다.

김상현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반대한

척화 주전론의 우두머리였어요.

조선 유학에 미친 영향이 큰 역사적 인물이에요.

청원류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지어졌어요.

노론 유학자의 권위도 있지만,

좌우 전면으로 누마루를 달아 강조하고 있어요.

이는 조선 초기 접객 중심의 가옥 구성 형식으로,

정자로는 매우 드물고 희귀한 건축물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요.

대청마루 오른쪽 온돌방은

국가유산 안전 관리실이 마련되어 있어요.

문화재 안전경비원 배치사업

복권기금으로 지원된다고 해요.

대청마루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담장과 주변의 초록색 싱그러움이 잘 어우러져요.

그냥 바깥 풍경 보면서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았어요.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대문채 너무 풍산읍 소산리의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답니다.

온돌방 양옆으로 누마루가 있어요.

누마루마다 많은 창문이 있어서

문을 열면 다양한 주변 풍경들을 볼 수가 있어요.

액자 포토존 같은 그림 풍경도 담을 수가 있답니다.

김범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에서

김상헌 선생이 누각으로 다시 지은 청원루!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자주 봐왔던 누각과는

확실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답니다.

처음에 청원루라는 이름이

참 멋스럽다 생각했는데요.

청나라에서 6년간의 인지 생활로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지었다니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해요.

안동 풍산면에는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체화정,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요.

청원루를 비롯해 당일치기 일정 코스 잡아서

방문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본 내용은 백은영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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