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학성공원 산책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무더위를 피해 그늘을 자주 찾게 되죠.
예상보다 더위가 빨리 찾아오면서 우산과 양산을 하나로 사용할 수 있는 우양산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자연이 만든 그늘이 더위를 피하기엔 제격이죠.
도심 속 걷기 좋은 산책로이자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 학성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오늘날의 학성공원이 조성된 건 일제강점기인 1913년 김홍조라는 인물이 이곳을 매입한 뒤 공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기증을 목적으로 공원을 조성했지만 안타깝게도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192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아들인 김택천이 그로부터 5년 뒤인 1927년 당시 울산군에 공원을 기증했고, 1928년 울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개장했습니다.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곳의 공식 명칭은 울산왜성입니다.
이름에서도 보이듯 일본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인데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쟁 바로 임진왜란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1592년 5월 23일 부산포를 통해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진격했습니다.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 조선은 망국 직전까지 갔지만 이순신과 권율 같은 명장들의 활약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의 게릴라전 그리고 당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세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1593년 8월, 명나라와 일본 간 강화 교섭이 시작되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3년간 지루한 협상이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일본군은 주요 거점지에 자신들의 성을 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세워진 곳이 바로 오늘날 학성공원이라고 부르는 울산왜성입니다.
물론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로 일본군이 성을 쌓기 이전에도 이미 성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엔 계변성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보이죠.
일본군 역시도 전혀 새로운 곳에 축성을 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활용되고 있던 장소에 추가로 성을 쌓는 형태를 택했습니다.
지금이야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을 세우면 되지만 과거엔 전부 사람이 동원되어 돌을 나르고 깎고 하며 성을 쌓아야 했으니까요.
마치 섬의 모양과 닮았다 하여 도산성이라고도 불렸는데요.
그래서 우리 측 기록에는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를 도산성 전투라고 합니다.
당시 조-명 연합군은 가토 기요마사가가 이끄는 일본군과의 공방전에서 패퇴했지만 적장인 가토 역시도 죽음의 고비에서 겨우 살아남아 성을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지금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도심 속 공원이지만 500년 전에는 지키려는 자와 함락시키려는 자 사이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장소였습니다.
지금도 공원 곳곳에는 당시 일본군이 쌓은 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중구의 병영성이나 울주군의 언양읍성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 성벽 양식이 아닌 특이한 모습이죠.
울산에는 이러한 장소가 한 군데 더 있습니다. 바로 서생포 왜성입니다. 울산에만 두 군데가 남아 있는데요.
당시 일본군에게 울산 지역이 중요한 군사적 거점지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명나라 군사와 일본군 병사들에게 이곳 울산왜성은 이역만리 떨어진 먼 타국이었을 겁니다.
반면 조선군 병사들에겐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삶의 터전이었을 겁니다.
실질적으로 전쟁에서 마주하는 병사들이야 자신들을 지휘하는 장수의 명령 아래 움직였겠지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면 전쟁으로 인해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승리를 하더라도 실질적인 보상은 크지 않구요.
우리는 당연히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군을 비판하고 그들의 침략행위는 규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적극적인 전쟁의지 없이 국가의 명령 아래 동원되어 희생당한 많은 목숨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위로받아야 할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걷는 학성공원의 산책길은 여러 삶을 생각해 보며 걸을 수 있는, 울산의 시간을 생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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