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기념관과 솔뫼성지의

천주교 이야기

충청남도 당진의 이름은 '당나라와 교역하는 항구'라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항구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 거죠.

툭 튀어나온 반도 지형 때문에 외부에서 뱃길로 닿기에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러기에 무역을 하기에 좋은 지정학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바닷물이 내륙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아산만의 특수한 지형으로 중앙정부로부터 육로 이동이나 접근이 매우 제한이 되는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곳보다 먼저 천주교가 정착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슬픈 역사도 있었는데요.

그중에 하나인 솔뫼성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솔뫼'라는 이름은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라는 순우리말입니다. 솔뫼는 사적 제529호로 지정된 곳으로 뫼는 물론 쉽게 말하자면 산이 있는 동산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그가 뛰어놀던 소나무 동산이 그대로 말없이 똑같은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솔뫼성지는 생각보다 꽤 넓습니다. 과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정리가 잘 된 이곳은 중요한 문화 유적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에 8월 21일 태어나 1846년 상하이에서 사제가 된 후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5세의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국내에서 가톨릭 성지로 알려질 수밖에 없는 이곳은 1984년 5월 한국에서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황 오한 바오르 2세가 김대건 신부를 대표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2014년 이곳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방문을 하였습니다.

입구 우측에 마당을 뒤로하고 성당이 웅장하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전통적인 카톨릭 스테인클라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 한편에서는 가톨릭 주제와 그 외의 소재를 바탕으로 이춘만 미술관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마음과 작품에는 종교적인 것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슈화되어 있는 5.18 민주 항쟁이나 세월호에 대한 작품도 있습니다.

그 외에 다양한 주제로 작가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작품이 성향을 느낄 수 있는데요.

한결같은 작가의 제작 스타일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은 성인의 고향으로 소나무 언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기념관의 형태 자체도 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배의 모양은 성인이 조선으로 입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기념하도록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서해 폭풍우에 라파엘호가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망망대해에 있는 수반과 같이 방향성을 모두 잃었지만 성모님의 도움으로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음을 형상화한 것이라 합니다.

기념관에서는 그동안 그려진 성인의 초상들을 시작으로 솔뫼가 속한 내포 지역의 교회 역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성인 집안의 가계, 성인의 행적과 순교에 관련한 활동도, 모형도, 물품들이 전시어 있습니다.

기념관에 전시된 문서와 친필 서한들은 원본도 있으며 서한의 원본 크기 그대로 복사·전시해 당시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처럼 깔끔하게 꾸며진 진열 벽에는 당시를 기억하는 기념품과 소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자료로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방문객을 위한 장소인지 매우 멋진 조명과 기도하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전도입니다. 다들 아시는 대동여지도보다 16년이나 앞서서 제작되었습니다.

지도 내의 동네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하여 우리나라를 지명을 외국에 소개하고 있으며 독도까지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기념관 앞에 있는 멋진 12사도상입니다. 흘낏 보아도 매우 오래되었고 풍미가 있는 조각들입니다.

예전부터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진품이라고 하니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방문객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러보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입니다.

1906년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에 의해 고증된 생가터가 1998년 '충남 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집을 문화재 의원들의 고증과 와편들의 발굴을 통하여 2003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년)를 비롯하여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2004년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와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1946년 세워진 순교 복자비, 김대건 신부 동상, 울창한 소나무 숲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솔뫼성지에서 성인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지냈던 일가의 생가를 복원하여 그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당시의 자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언덕입니다. 솔뫼라는 이름처럼 시원하고 아름답습니다.

소나무 숲에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입니다.

​석고로 제작된 예전의 성상은 파손되었으며, 현재의 성상은 1977년 전뢰진(田雷鎭, 1929~ ) 교수가 제작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 고난의 길로 불리는 산책로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이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 길을 나타낸 길입니다.

길을 지나는 곳에는 동상과 자취가 있습니다.

총 14개의 지점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동상들이 그 지점마다 그 이유와 처절한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점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예수에게 가시관을 쓰게 하고 놀린 곳으로 예수의 무거운 십자가 짐을 진 모습니다.

앞뒷면의 모습과는 다른 십자가를 진 모습입니다. 모양이 복잡해 보이지만 무언가 전달하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이슈나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역사의 기념이나 유적을 둘러보거나 산책하듯이 볼 수 있는 유적지라고 생각됩니다.

혹시라도 가까운 곳에 지나가실 일이 있다면 한번 이곳도 들러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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