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객사는 성종 19년에 지어졌으며,

그 후로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고

일제강점기에는 양조장으로 사용되다가

주택으로 바뀌었으며,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되어있었어요.

팽성읍 객사는 문화재이기 때문에

문을 항상 열어놓지는 않았어요.

객사에서 행사가 열리거나

평택시 시티투어 운행 등을 할 때

문이 열리니 사전에 방문을 해도 되는지

문을 열어주는지 알아보고 가셔야 합니다.

팽성읍 객사는 조선시대 객사이고

1989년 6월 1일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조선시대의 팽성현 객사로,

원래는 작은 규모였으나 현종 때 큰 규모로 중창하였고,

1760년과 1801년에 중수하였어요.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지방 고을 중심부에 설치했던 관사이고

평택에는 진위면에 객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실 되어서 없고

팽성읍에만 객사가 있어요.

객사 위쪽에는 긴 오두막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앉아서 보니 객사가 훤히 보였어요.

대문간채이고, 한 칸의 솟을 대문 사이에 두고

행랑을 좌우로 지었고

초석과 기둥, 들보 등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요.

현재 대문간채와 9칸의 본채가 남아있는데

본채의 3칸은 중대청, 좌우 각각 3칸은 동헌.서헌이라고 해요.

중대청은 안에 왕을 의미하는 전패를 모시고

고을 수령이 한 달에 두 번 배례를 올리던 곳이였어요.

동헌.서헌은 다른 지방 관리들이 머무르던 숙소이며,

대문간채 중앙에는 솟을 지분으로 된 1칸의 대문이 있고

중대청과 대문의 지분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를 놓았어요.

굵은 원형 기둥에 초익공으로 얼개를 짓고

동헌.서헌보다 지붕을 높여 격식을 높혔다고 합니다.

밖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어요.

객사 바깥으로 나오면 돌담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화장실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화장실과 관리사무실이었다고 하는데

예전 모습과 조금 달라지고

화장실로 가는 입구만 있었어요.

밖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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