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우리나라가 독립한 달입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의 안위는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우국충정으로 자신의 한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쳤습니다.

현충 시설 ‘산남의병 제4차 결성지’인 영천 보현산에 자리 잡은 거동사를 방문합니다.

거동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시찰로서 조선시대까지도 큰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터를 보면 대형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거동사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3㎞ 아래인 영천댐 상류인

지금의 충효사까지 내려올 정도로 신도가 많았다고 합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지은 지 알만 안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요

요사채로 사용되며 거동사 전체적으로 규모를 조금씩 늘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웅전이 보이는 우측에

작은 돌에 거동사라고 적은 돌기둥이 보입니다.

계단에 다 올라서면 대웅전이 보이는데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1797년 (정조 21)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동사는 조선시대까지도 사찰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사격에 맞게 대중의 공양을 위해 쌀뜨물을 흘러내리면 쌀뜨물이

자양댐 방향 충효삼거리까지 4km나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초기의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사찰명이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1669년(현종 10) 민주면이 간행한 동경잡기에 거동사지가 죽장현의 서남 15리에

있으며 그 흥폐 연대는 알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약수터가 보이는데요

맑은 물이 고여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며

물바가지로 물을 마시기에도 괜찮습니다.

산신각 그 앞으로는 등산로가 열려 있어서

사람들이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곳입니다.

영천 거동사는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 시설임을 알 수 있는데요

산남의병 제4차 결성지이며 1908년 최세윤이 제4차 산남의병을 결성한 곳입니다.

산남의병은 1906년 음역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당시 의병장 정용기는 영천에서 의병 1,000명을 모아 산남의진을 결성,

일제에 대항해 싸우다 1907년 9월 전사했고,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이 의병대장으로 추대돼 일제에 맞서 싸우다

같은 해 11월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했습니다.

이어 의병대장 최세윤이 1908년 2월 거동사에서 4차 산남의병을 결성해 일제와 싸웠고,

특히 이곳 거동사는 산남의병의 4차 결집지로 5천여 명의 의병들이 일제 침탈에 맞서 싸운 곳입니다.

이에 따라 국가 보훈처는 지난 2013년 2월 거동사를 현충 시설로 지정했습니다.

정부는 산남의진 의병을 이끈 정용기 정환직 의병대장에게 각각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최세윤 의병대장에게도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구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 의병들의 우국충정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영천 거동사

주소 : 경북 영천시 자양면 사곡길 77-81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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