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전설이 깃든

양춘이 바위 마애불 탐방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조성한 마애불

선각기법과 고부조 기법으로 조성한 두개의 마애불

정절을 지킨 여인의 한이 핏빛으로 스며들다

운선암 연못에 노랑어리연도 가득 피어

백두대간에서 갈린 호남정맥이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 순창새제 윗봉(530m)에서 분기해 입암산,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이 지나는 고창군 성송면(星松面)입니다. 대부분 50m 이내 구릉성 평지이지만, 장성군 황룡면과 경계를 이루는 영산기맥 장고산(528.2m), 구황산(499.8m), 추산봉(272.1m) 등 동쪽으로 300~500m 산이 감싸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삼태봉(197.8m)이 면 중앙에 우뚝 솟은 형태인데요, 고창이 본관인 무송 유씨, 무송 윤씨, 무송 하씨 등 3명의 정승이 나온 삼태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성송면은 과거 무장군의 한 지역으로 꽤 유서 깊은 마을들이 있지만, 20244월 현재 1,648명 정도가 거주해 고창군에서 면의 형세(面勢)가 가장 약한 곳이기도 한데요, 반면 국가유산 시도유형문화유산은 상당히 많습니다. 무송리 석불좌상, 산수리 지석묘,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사내리 당산, 암치리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 암치리 선각 석불좌상, 운선암 마애여래상 등입니다. 그중 오늘 소개하는 시도유형문화유산은 운선암 마애여래상인데요, 영산기맥이 지나는 추산봉 아래입니다.

추산봉 운선암 (雲禪庵)은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로 산 중턱에 고려시대에 조성한 2기의 마애불을 모신 절이 있었던 곳에 100여 년 전 미륵전을 짓고 마애불을 모시던 곳인데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53년 법당과 요사채를 짓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록 천년고찰은 아니지만 고려시대부터 절이 있던 곳인데요. 마애불 하나에 전해오는 가슴 아픈 전설이 있어 소개합니다.

고창남중학교에서 약 1km 정도 오솔길 따라 차를 가지고 올라가면 운선암에 도착합니다.

추산봉아래 중턱쯤 되는데요.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목 커다란 바위에 양각과 음각으로 새긴 금석문이 있습니다.

'草山處士 鄭公季源遺墟(초산처사 정공계원유허) 崇禎五丁卯 二月日 完山崔銓九書(숭정오정묘이월일 완산최전구서)'라는 글귀가 보이는데요, '1927년 처사 정계원이 학문을 닦던 곳을 전구가 쓴 글'이란 뜻입니다.

정계원이란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최전구(1850~1938)는 한말 의병으로 성송면 출생이어서 전북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인데요, 한말 의병장 최익현과 함께 순창에서 체포돼 대마도로 유배된 분으로 1910년 경술국치 때 다시 유배, 1917년 독립의군부 특파내외순찰사로 활동하다 붙잡혀 다시 유배되는 등 10여 차례 구금과 유폐 생활 끝에 1936년 성송면에서 운명하신 분입니다.

운선암은 관음전, 대웅보전, 산신각, 범종각 등 불전과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곳곳에 영천수각 공적비와 헌성자 방명록 등이 있어 신자 수는 상당히 많은 걸로 보입니다.


마애불,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상 지정

마애불은 두 곳에 있는데요. 산신각 뒤로 200m 정도 올라가면 양각된 마애불이 나오고 산신상 뒤쪽 일로당에는 음각된 마애불이 있습니다. 두 개의 마애불 모두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애불입니다.

장독대가 가지런하게 놓인 곳으로 따라가면 암벽과 함께 집이 한 채 나옵니다.

잡초가 많이 웃자라 야자 매트 등을 깔려고 준비하고 있는데요, 다음에 가면 쾌적하게 탐방할 수 있겠습니다.

운선암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암벽 상단에 새겼는데요, 높이가 4m는 되는 지점이어서 바위에 새길 때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애불은 선으로 새긴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두 겹으로 두른 원형 광배와 연꽃 받침대 위에 책상다리까지 선명한데요, 얼굴은 마모가 돼 알아볼 수 없지만, 이마 정중앙에 백호(白毫)는 뚜렷합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유행했던 선각 기법이어서 조성시기도 최소 고려시대로 추정하는 마애불입니다.

마애불 옆에는 일로당(逸老堂) 편액이 걸려있는 집이 있습니다.

고창 공음 칠암리 출신으로 기우민 문하에서 수학한 서화가 최순모(崔純模 1886~?)가 시문(詩文)과 서화(書畫)로 노년의 즐거움을 삼기 위해 성송면 학산(鶴山) 추산 아래 일로당을 짓고 사림(士林)을 맞이하고 후진(後進)을 양성했던 곳이라 합니다.


풍경과 함께 보는

마애불

이제 또 다른 마애불을 만나러 산신각 뒤 가파른 계단을 오릅니다.

언뜻 봐도 108계단은 되어 보이는데요, 이쪽 마애불은 선각 마애불이 아니라 바위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마애불이라는 특징이 있고 전설도 있어 오르는 내내 가쁜 숨 몰아쉬고 전설을 쫓아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200m쯤 올라가면 신기하게도 커다란 바위가 나오는데요, 좌우로 기단을 쌓고 돌계단까지 조성 당시 모습 그대로 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에 있는 마애불은 각시바위(양춘암)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좌우로 여러 불상을 새길 수 있을 정도로 반반하지만, 한가운데 딱 하나 있습니다. 혹시 새긴 흔적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흔적도 없는데요, 가운데 툭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부처님이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으로도 보입니다.

보통의 마애불은 바위에 선각으로 조각하지만, 운선암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돋음새김(고부조高浮彫) 형태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높이는 2.3m로 앞쪽으로 비스듬하게 새겨 굽어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사이라는데요, 도드라지는 특징은 가슴 아랫부분이 날카로운 칼로 잘린 듯한 모습과 그 아래 핏빛으로 보이는 무늬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절에서 백일기도 하던 여인을 절의 스님이 가슴을 더듬었고 여인은 가슴을 자르고 자결했다는데요, 스님이 여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산 중턱 바위에 여인을 조각했지만, 먹구름이 끼며 가슴 부위가 떨어져 피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이 양춘이어서 훗날 사람들은 바위를 양춘이 바위라고 불렀는데요, 사람들이 가슴 부위에 흐르는 피를 아무리 닦아도 언제나 똑같은 양의 피가 계속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닦을 생각은 마세요.

주변 바위를 돌아보니 우측으로 물개 형상, 두꺼비 형상, 복주머니 형상 바위도 보이는데요, 한번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복주머니는 꼭 찾아보세요. 3개를 모두 찾아야 복이 갑니다.

마애불 탐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연못을 보는데요, 어리연이 가득 피었습니다.

벌써 연꽃이 필 시기인가? 생각해 보는데요, 바위에 일신우신(日新又新) 탕덕0(湯德0) 정휴0(鄭休0)라는 글씨와 폭포 글씨도 보입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바위 위로 모여 떨어지는 곳인데요, 자그마한 폭포여서 비 오는 날 시인 묵객들이 앉아 시문깨나 읊었겠습니다.

수련과 노랑어리연이 수북하게 피었습니다.

6월에서 7월 사이에 피기에 뜻밖에 눈 호강인데요, 수련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어리연은 귀하디귀한 연꽃입니다.

'어리'라는 말은 '작다'라는 뜻인데요, 연꽃 중에서 가장 작은 연꽃이어서 '어린연' 노란색이어서 '노랑어리연'입니다. 늦봄과 초가을에 한 번씩 핀다는데요, 이제 막 피어났으니 고창 운선암에 가시면 꼭 노랑어리연도 함께 보세요.

오늘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양춘이 바위 슬픈 전설이 어려 있는 고창 운선암 마애불을 탐방했는데요, 개 여러 마리가 목줄이 없는 상태에서 절을 지키고 있지만, 짖기만 할 뿐 사납지 않고 또 늘 챙겨 다니는 댕댕이 간식으로 유혹해 별문제 없이 탐방할 수 있었습니다. 태고종 사찰로 현 주지인 선덕 스님이 1985년 혼자 몸으로 운선사를 일으켰다고 하는데요, 일로당 옆 마애불과 산신각 뒤 마애불 등 2개의 마애불이 있으니 탐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사진=심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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