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화남리 한광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권응수 장군 유적’이 있습니다.

화남리의 마을이 시작하는 곳에 위치한 권응수 장군의 유적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위치한 '권응수 장군 유적'은 임진왜란 당시 영천성을 탈환하는 등

큰 공을 세운 권응수 장군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권응수 장군은 의병을 조직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는데,

특히 영천성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영천성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적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며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고,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권응수 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를 내려받았습니다.

2023년 5월에 세워진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 기념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천성을 탈환한 전투를 기념하며,

특히 이 전투에서 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권응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권응수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경충사(景忠祠)는 권응수 장군의 뛰어난 공훈을 기리기 위해 후대에 세워진 사당으로,

장군이 나라를 위해 바친 헌신과 충성을 기념하고자 조성되었습니다.

보통 권응수 장군이라고 하면 영천성 전투를 떠올리는데,

이는 조선 의병과 관군이 협력해 일본군을 물리치고 영천성을 탈환했으며 육지에 승리한 최초의 전투입니다.

의병과 지역 주민들의 단합으로 조선군이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죠.

영천성 수복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왜군에게 점령당한 국토를 되찾기 위한 첫 번째 성과로 기록되어 있기에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경충(景忠)’이라는 이름은 그의 충의를 기리며 나라를 위해 빛나는 업적을 남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사당이 가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충사 내부에는 권응수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이곳을 통해 후손들이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권응수 장군의 유물 전시관은 장군이 사용했던 무기, 장검, 교지(敎旨) 등이 전시되어 있어,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때문에 많은 곳에서 역사 탐방을 오기도 하는 곳입니다.

권응수 장군 유적지의 오래된 은행나무가 유적지 안을 노랗게 물들여주고 있습니다. 바닥에 온통 은행나무가 가득합니다.

은행나무는 불멸과 함께 희생과 충절을 의미하는 나무라고 합니다.

특히 잎의 모양이 부채꼴로, 과거 선비들이 쓰던 부채와 유사해 충성과 절개의 이미지와 연결되곤 합니다.

권응수 장군의 충절과 연관되는 은행나무가 유적지 안에 가득차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절과 백성에 대한 희생을 되새길 수 있는 권응수 장군 유적지에는 가을철 황금빛으로 물드는 은행나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천성을 탈환했던 권응수 장군의 업적은 경북 영천 지역의 자랑을 넘어, 조선 역사 속 중요한 승리로 기억됩니다.

그의 헌신을 기리며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는 이곳을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드립니다.

권응수 장군 유적지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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