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의 정취가 있는 당진 골정지

과거시험에 1차에 수석을 하였으나 2차시험에서 백지를 내거나 그림을 그려서 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연암 박지원'입니다. '열하일기' 와 '허생전' '양반전' 등으로도 유명하죠.

그의 '열하일기'는 기존의 한문과 달리 세부적인 묘사와 소설을 읽듯이 마치 독자로 하여금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는 청나라와 고구려의 지리적 역사적 특색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열하일기는 완성하기도 전에 필사본이 돌아다니던 책으로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 였으며, 이 글로 인하여 '문체반정' 사건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가 1796년 (정조 21년) 면천군수로 임명된 후, 가뭄을 대비하는 저수지에 초가정자를 세운 것입니다. 바로 이곳이 '골정지'입니다.

저수지 중앙에는 고즈넉한 정자가 세워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며 정조 24년(1800년) 경신년에 면천군수였던 연암 박지원이 골정지 안에 인공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워 두보의 시구절에서 따와서 하늘과 땅사이의 한 정자라며,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이 곳에서 향교의 유생들이 시를 읊거나 학문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정2품의 요즘의 장관까지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벼슬을 못하고 음서 추천으로 그나마 자리를 잡았으나 곧 죽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으로 나중에 글을 배우게 되었고, 한문과 다른 요즘 소설과 같은 쉬운 글체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특히, '허생전'은 '열하일기'안에 나오는 한문소설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개혁적인 군주라는 정조는 이것을 막으려고 규장각을 세우고 '문체반정' 사건으로 이러한 글을 금지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을 수는 없었죠. (정조의 아버지인 뒤주에 갇혀죽은'사도세자' 조차 이러한 글에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곳은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을 때에 벼슬에 욕심이 없던 것처럼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사람들에게 곡식을 모두 나누어 주며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천주교신도들 또한 백성이라며 모두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가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저수지입니다. 나중에 나눠준 곡식을 되돌려 받아서 너무 많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정부에서 그것을 팔아야한다며 눈독을 들이자, 다시 사람들과 이웃마을까지 모두 나누어주어서 창고를 비웠습니다.

이 정자는 일제강점기에 없어졌으나, 2006년 당진시가 인공섬과 정자를 복원한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지 않고 비워내는 소탈한 여유가 보이는 듯 합니다.

현재, 저수지 주변을 따라 운치있는 산책길이 있습니다. 흔들의자와 운동기구도 보입니다.

한바퀴 돌아보면, 참으로 향교와 사람들의 정취가 있는 골정지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는 힘들게 살았으나 베풀었습니다.

고생으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중풍으로 마비가 되어 죽게 되지만, 훗날 그의 손자 ‘박규수’는 ‘제네럴셔먼호 사건‘을 지휘하고 최고자리인 정승까지 하게 됩니다.

이곳 골정지를 가벼운 산책과 명상도 할 수 있는 곳으로 한 번 들려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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