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 #청양군 #백제문화체험박물관 #기와 #벽돌 #문화

#종교 #정치 #백제 #금광 #구봉광산 #사금 #공룡


청양군SNS서포터즈 이종진

청양에서 만나는 백제,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둘러봤어요

2번째 이야기: 기와편, 금광체험관

금을 캐러 청양에 오시라오~

안녕하세요. 이종진입니다. 지난번에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소개해드렸는데 워낙 넓은 곳이라 한 번에 다 소개를 못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이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전 포스트는 이곳이니 둘러보시고 오시는 것도 좋습니다.

https://blog.naver.com/cheongyange/223783252487

이어서 기와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청양은 백제와 관련한 여러 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건축물에 있어서는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바로 기와와 벽돌, 토기와 자기가 있습니다. 가마는 백제의 유산으로 태어난 여러 흔적을 같이 살펴보시죠.

기와는 기술력과 문화, 신앙, 정치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와 가마에서 탄생한 백제의 유산

백제는 한성기에 기와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서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에서 풀꽃, 동전, 짐승 얼굴 등의 무늬가 새겨진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웅진기(공주)로 도읍을 옮긴 후에는 연꽃무늬 수막새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공산성과 대통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이 대표적입니다. 사비기(부여)에는 도성 내 왕궁과 관청, 정림사지, 능산리사지, 왕흥사지 등 사원의 증가로 기와 제작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연꽃무늬 외에도 바람개비 무늬와 민무늬 수막새, 서까래 기와, 치미 등 다양한 형태의 기와가 제작되었습니다. 백제 기와는 회백색이나 회청색을 띠며, 부드럽고 단아한 연꽃무늬 장식이 특징입니다.

백제의 기와 가마에서는 기와뿐만 아니라 벽돌과 토기도 함께 제작되었습니다. 기와 공방은 작업장, 건조장, 가마, 땔감 및 진흙 보관소, 공인의 주거지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가마는 아궁이, 연소부, 소성부, 연도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금강 등 뱃길이 편리한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기와는 백제 시대부터 현대까지 사용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단순한 건축 자재를 넘어, 기와의 형태와 다양한 무늬에는 왕권, 종교, 길상, 벽사 등의 상징체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기와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예술적 유산입니다.

전통기와를 어떻게 만드는지 영상자료를 통해서 볼 수 있고 아래는 미니어처를 통해서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기와도 틀도 만들며 굽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가마터는 필수입니다.

벽돌편입니다. 벽돌은 왕릉이나, 사찰, 궁궐, 관청 등의 주요 건축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장식으로 쓰여서 미적 요소와 상징적인 의미를 담겨져 있습니다. 백제에서 벽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백제의 예술이 깃든 무늬벽돌

백제는 한성기부터 네모난 무늬 없는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공주로 도읍을 옮긴 웅진기에는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과 같은 벽돌무덤을 쌓기 위해 다양한 무늬벽돌을 제작하였습니다. 공주에서 발견된 무늬벽돌에는 연꽃무늬, 넝쿨무늬, 동전무늬, 사격자무늬 등이 있으며, 이는 부여 정동리 가마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비기(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궁궐과 관청, 사원에서 무늬벽돌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부여 외리 유적의 백제 사비기 건물터에서는 백제적인 미학이 반영된 8가지 무늬벽돌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산경무늬 2종, 귀신무늬 2종, 용무늬, 봉황무늬, 연꽃무늬, 연꽃구름무늬가 포함됩니다. 처음 발굴 당시, 이 벽돌들은 남북으로 길게 바닥에 깔린 상태였으며, 한 변의 길이가 29cm, 두께가 4cm인 정사각형 형태로, 네 귀퉁이 옆면에 홈이 파여 있어 벽면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중 산경치무늬 벽돌은 강물을 배치한 아래쪽과 산, 구름, 봉황이 있는 위쪽으로 구성되어 있어, 배산임수와 같은 이상적인 세계를 한 폭의 산수화처럼 표현하였습니다. 귀신무늬 벽돌은 양팔을 벌리고 당당히 서 있는 괴수를 묘사했는데, 한쪽은 연꽃무늬를, 다른 한쪽은 기암괴석을 밟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용과 봉황, 연꽃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백제인들이 꿈꾸던 이상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의 바닥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된 사격형 벽돌이 깔려 있습니다. 이 벽돌은 백제의 무늬벽돌과 형태나 무늬가 다르지만, 옛 사람들이 무늬벽돌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백제의 무늬벽돌은 단순한 건축 자재를 넘어, 당시의 문화와 이상을 반영한 예술적 유산으로 평가됩니다.

이렇게 기와, 벽돌, 토기, 자기를 살펴봤습니다. 백제의 문화 속에서 꽃 피운 이러한 유물들은 신라와 고구려와 달리한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제는 일본에 이런 문화를 전수할만큼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양에서 만난 기와, 벽돌을 뒤로하고 이제는 인물과 근현대 청양을 둘러보겠습니다.

청양을 거쳐간 사람들에게는 6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이 있습니다. 정무는 백제 의자왕대 좌평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도침은 백제 말의 승려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복신은 의자왕의 사촌이자 무왕의 조카로 도침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권진은 세종대의 우의정으로 청양 객사 쌍청루에 시를 남겼습니다. 정약용은 금정역 찰방으로 부임하고 성호 이익을 기리는 서암강학회를 열고 금정일록을 남겼습니다. 윤하교는 청양현감으로 부임하고 백성을 잘 다스려 선정비가 있습니다. 박효헌과 조남순은 정산현감으로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김병연은 일명 김삿갓으로 청양에 들린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김구, 노무현 등 많은 이가 청양을 거쳐갔습니다.

근현대사의 청양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입니다. 옛 추억을 담은 청양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이곳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런 옛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날과는 다른 옛모습도 있고 보부상에 대한 전시도 있습니다. 청양을 거쳐간 이들이 많기에 이런 기록물과 문화가 있는데요. 청양에 대해서 배우려면 이곳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꼭 거쳐가야겠습니다.

외부로 나오면 금광체험관이 있습니다. 청양은 금광이 유명한데요. 비봉광산, 삼광광산, 구봉광산, 청양광산, 중천청양광산 등 광물의 자원보고인 청양입니다. 금과 은, 텅스텐을 비롯해 녹주석, 질석, 석탄 등이 풍부한 청양입니다.

2억 년 전의 청양과 홍성에서는 조산운동으로 습곡산맥이 형성된 퇴적분지로 넓게 분포하여 많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금광인 구봉광산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1971년 폐광될 때까지 운영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봉광산의 매몰 사건으로 김창선씨가 구조되었는데요. 무려 16일을 버티면서 구조가 된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청양에서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 문화를 만나봤습니다. 백제의 문화권인 청양에서 역사기행과 치유기행, 맛기행도 좋습니다. 이렇게 청양을 소개드리면서 저도 많은 즐거움을 느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청양을 계속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title":"청양에서 만나는 백제,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둘러봤어요-2번째 이야기(기와편, 금광체험관)","source":"https://blog.naver.com/cheongyange/223825120784","blogName":"청양군 공..","domainIdOrBlogId":"cheongyange","nicknameOrBlogId":"청양군","logNo":223825120784,"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false,"cafeDisplay":false,"blogDisplay":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