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민기자단|김영진 기자

감고당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 잡은 명성황후 생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던 명성황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명성황후 생가 연못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본명 민자영은 조선의 26대 왕 고종의 비로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인물입니다. 명성황후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은 단순한 생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명성황후의 생가를 중심으로, 감고당과 명성황후기념관, 민가마을 그리고 소원바위까지 둘러보며 그 매력을 느껴보겠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생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생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통 한옥의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생가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춘 고풍스러운 기와집으로, 내부에는 명성황후의 생애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입구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한옥의 정갈한 기운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기와지붕 아래로 부드럽게 흐르는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명성황후 생가 안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성황후 생가는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입니다. 안채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여 현재의 행랑채, 사랑채, 별당채를 갖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안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전체적인 구조는 조선 중기의 살림집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안채에는 1998년 명성황후 탄신 147년을 기념하는 숭모제 때 봉안한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 있습니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생가 오른쪽에는 명성황후가 어린 시절 열심히 글을 읽었다는 공부방이 있던 자리에 그녀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명성황후탄강구리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비의 앞면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 명성황후가 태어난 옛 마을)’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고, 뒷면에는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음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飮敬書, 광무 8년 갑진오월 어느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 새겨놓았습니다.

탄강(誕降)은 왕이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말하고, 구리(舊里)는 고향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쓴 이는 알 수 없으나 황태자 시절의 순종이 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감고당

감고당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생가 입구를 들어서면 큰 기와집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됩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오게 된다면 이곳이 명성황후 생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잘 지어진 이 건물은 감고당입니다.

서울시 감고당길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역사와 문화 공간이 많이 남아 사람들이 자주 찾는 서울 북촌을 가본 사람이라면 ‘감고당길’을 거닐어 봤을 것입니다. 인사동을 거쳐 서울공예박물관을 지나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이 길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큰 인기를 끄는 길입니다.

감고당 사랑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감고당은 장희빈이 왕자 균(뒤의 경종)을 낳으면서 세자 책봉을 둘러싼 문제에 휘말려 폐서인 된 인현왕후가 6여 년간 머물던 곳으로 1761년(영조 37) 인현왕후의 사가를 찾은 영조는 인현왕후가 머물던 침실을 ‘보면, 옛일을 느껴본다(感古)’라는 뜻에서 감고당이라 이름하고 어필로 그 편액을 써서 걸도록 했습니다.

감고당 행랑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감고당은 인현왕후 다음으로 여흥 민씨 출신으로 고종의 왕비가 되는 명성황후와도 그 인연을 이어가게 됩니다. 부친 민치록이 사망하자 8세 때 한양으로 온 명성황후가 머문 곳은 감고당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1866년 고종의 왕비로 간택되기 전까지 어머니와 감고당에서 계속 거주하였습니다.

감고당 중문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원래 서울 북촌의 중심인 안국동 덕성여고 교정에 위치하고 있었던 감고당은 마당이 상당히 넓고 건물들은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것이 특징입니다.

감고당 안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안채는 비교적 조선 후기 한옥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채는 중국풍의 누마루를 하고 있으며 유리 창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권문세가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북촌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당시 그들이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감고당 사랑채 누마루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쪽에 위치해 있던 감고당은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졌고, 이후 쌍문고등학교 신축 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2006년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던 여주시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 신축하였습니다.

명성황후기념관

명성황후기념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기념관은 생가와 감고당을 방문하기 전 반드시 들러야 할 곳입니다. 명성황후 생가 추천 관람코스를 보면 기념관을 먼저 둘러보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기념관 내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이 기념관은 명성황후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장소로, 그녀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명성황후의 생애를 다룬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 자료가 마련되어 있어,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기념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조선의 마지막 황후로서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 일본의 침략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명성황후의 강인한 의지와 지혜를 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원바위

소원바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생가 주변에는 특별한 장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이 집안에 자식이 없어 근심하며 기도를 올렸던 소원바위입니다.

결국 민치록은 53세가 되던 해에 딸을 얻었고 바로 명성황후입니다. 이 바위는 방문객들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입니다.

민가마을

명성황후 생가 민가마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생가와 감고당 사이 넓은 공간에 초가집 몇 채가 들어서 있는 민가마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전통 한옥을 복원하여 조성된 공간입니다.

명성황후 생가 민가마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한국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생활의 지혜를 느껴볼 수 있는 민가마을에는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과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민가마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특히 한복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어 한복을 입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명성황후 생가와 감고당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하며 그녀의 삶과 조선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여정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즈넉한 한옥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명성황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 민가마을 ⓒ 김영진 여주시민기자

단순한 관광지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명성황후 생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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