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 3.1운동 부산진(좌천)에서 시작

부산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부산진(좌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경성의 3.1운동 소식은 이틀만인 3월 3일에 부산에 전해졌고, 이를 접한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들이 태극기를 만들어, 11일 오후 9시 기숙사에서 좌천동 거리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입니다.

11일 일신여학교 시위는 그 규모나 공간이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산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동래시장 만세시위, 구포시장 만세시위에까지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산의 3.1운동 발생지 동래장터와 구포장터

부산지역의 3.1운동 발생지는 동래장터와 구포장터가 대표적입니다. 두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사람들의 이동이 비교적 많은 5일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산진에서의 시위가 일어난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13일, 동래시장에서 촉발되었는데요.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엄진영이 군청 앞 망미루에 올라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3월 18~19일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에 의한 조직적인 만세운동이 이어졌습니다. 동래시장 만세운동은 200여 명 이상이 참여함으로써 부산진 만세운동보다 규모나 참여 세력의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포에서는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이 구포면 서기 임봉래를 찾아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소식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준비되었습니다. 3월 29일 박덕홍, 손진태, 김장학 등의 청년들이 비밀리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장을 보러왔던 김해, 양산, 동래 등의 지역 사람들도 참여하였고, 이후 경남 각지로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학생층이 주도하고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

부산지역 3.1운동,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매개

출처 : 북구청 공식 블로그

동래시장과 구포시장의 3.1운동은 도시의 특성에 맞게 학생층이 주도하고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경남 각지로 시위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지명위원회’는 ‘舊 대동병원사거리 맞은편 하나은행(옛 동래읍성 남문터) - 동래시장 - 동래구청 - 복천박물관’까지의 도로(연장570m, 폭8m)를 3.1만세거리로 지정하였습니다. 동래시장에서는 1995년 이후 매년 동래장터 3.1 만세운동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포역부터 구포시장 입구까지 약 600m 도로가 구포장터 3.1만세거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구포시장에서는 광복 5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등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시위 현장은 현재도 시장으로 기능하며 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미래유산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을 지닌 중요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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