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에 내리면, 바로 건너편에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차이나타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패루와 이국적인 분위기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

국내 최대 규모의 화교 공동체 지역으로

붉은색으로 꾸며진 중국풍 거리와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며,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형성된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기원

개항기 때 '청관'으로 불렸던

청나라 조계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계지는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써,

열강들이 조선에서

자국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본거지 역할을 했답니다.

1883년, 제물포 조약에 따라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인천 개항장 일대에는

일본과 청나라를 비롯한

열강의 조계지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흔적이 바로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입니다.

계단을 경계로

우측은 일본, 좌측은 청나라 조계지

나누어져 있는데요.

그 영향 때문인지

흥미롭게도 계단을 경계로

건물 양식과 거리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나라 조계지 쪽은 소박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분위기였는데요.

그 이유는 아마도

이곳의 기원에 있을 겁니다.

1884년 인천 개항장에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설치된

청나라 조계지는

'청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차이나타운과 화교 사회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온

40여 명의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조선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고 무역을 담당했습니다.

서해를 두고 맞닿은 산동성에서 건너온

중국인 노동자들도

청나라 조계지에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 차이나타운과

한국 화교의 기원이 되었죠.

당시 ‘청관’에는

청나라 영사관을 비롯한 관공서들과

여러 중국 상점들이 들어섰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짜장면 역시

이곳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청관은 1910년 한일병합 후

1914년 폐지되었지만,

화교 사회는 그 후에도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발전을 이어왔습니다.

개항기 청나라 조계지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인천 차이나타운과 화교 사회는

우리 근대사의 명암을 함께해 왔습니다.

비록 혈통은 다르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지난 100여 년 동안

같은 땅에서 슬픔과 기쁨을 겪고,

다름 속의 공존을 경험하며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 온 이들입니다.

인천 개항과 함께 시작된 ‘청관’

일제강점기 ‘지나정(支那町)’으로

다시 현재의 차이나타운으로 변화하며

오늘날 국제도시 인천과

문화사회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차이나타운을 방문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면서

그 독특한 정취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인천 차이나타운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나타운>

※ 본 게시글은 제12기 인천시 SNS 서포터즈 최용석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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