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령왕이 남긴 유물들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날씨가 추울 땐 집에만 있지 말고 박물관으로 가세요.

따뜻한 곳에서 선조의 찬란한 문화를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국립공주박물관 웅진 백제실에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전시하고 있으니

백제의 수준 높은 금속 공예의 진수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무령왕릉

1971년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아무도 건들지 않았기 때문에 부장품을 온전하게 수습할 수 있었고,

그때 출토된 지석을 통해 무령왕릉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입니다.

▲ 무령왕 흉상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은 462년 동성왕(모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이름을 사마 또는 융이라 하였고, 8척의 큰 키에 인자하고 관대한 성품을 가졌으며,

동성왕의 뒤를 이어 40세에 왕위에 올라 담로제를 통한 왕권 강화와 함께 기근 해결과 농사 장려로 민심을 안정시켜 웅진 천도 후 지속되었던 혼란을 수습하고,

고구려와의 전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여 대외적 입지를 높인 뒤, 고구려를 격파하고 강국이 되었다는 누파구려 갱위강국(累破句麗 更爲强國)을 선언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굴식돌방무덤

무령왕릉은 굴식돌방무덤 형태로 조성되었는데, 내부는 널길과 널방으로 구분됩니다.

널길

▲ 무령왕릉 널길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굴처럼 생긴 길을 널길이라 하며,

맨 앞에 오수전과 묘지석을 두고, 이어 진묘수를 세우고 뒤에 제사상을 차려 놓았습니다.

널방

▲ 무령왕릉 널방

무덤 안에 관이 있는 방을 널방이라고 하며,

널방 안에는 왕과 왕비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지석

지석이란 지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을 돌에 새긴 매지권으로,

무덤 입구 널길 맨 앞에 오수전과 함께 놓입니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왕과 왕비의 지석 2매가 발견되었으며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왕의 지석

▲ 왕의 지석

왕의 지석 앞면에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던 해(523년)에 죽어 묘에 안장하며 매지 문서를 작성한다는 내용을 새겼는데,

영동대장군 사마왕이라고 시작되는 지석의 중앙(구멍 아래)에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을 써서 격을 높였습니다.

뒷면에는 가장자리에 선을 긋고 간지와 8괘를 새긴 간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왕비의 지석

▲ 왕비의 지석

앞면에는 526년 왕비가 죽어 장례를 지내고 529년 왕과 합장한다는 내용을 기록하였고,

뒷면에는 일만 문의 돈(오수전)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무덤을 만든다는 내용의 매지권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묘수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 세계로 인도하는 상상의 동물로,

무령왕릉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었습니다.

▲ 진묘수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통에는 갈기처럼 생긴 날개가 있으며,

입은 살짝 벌리고 네 다리는 걷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상

진묘수 뒤로 관이 있는 널방 앞에 제사상이 놓여 있습니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왕이 죽은 후 매년 이 자리에서 3차례의 제사를 지냈고,

이후 왕비가 죽은 해에 마지막 4번째 제사를 치른 후 무덤을 폐쇄했다고 합니다.

1971년 발견된 제사상은 50여 년이 지난 2022년에 복원되었으며,

복원 과정에서 제사상에 은어가 올려졌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널방 안에는 왕과 왕비의 널(관)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 왕의 관

왕의 관은 부식이 심해 뚜껑과 측면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왕비의 관을 참조하여 복원하였고,

▲ 왕비의 관

왕의 관에 비해 왕비의 관은 형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장품

왕과 왕비의 꾸미개들은 모두가 섬세하고 화려하여 백제 금속 공예의 진수를 엿볼 수 있으며,

부장품은 모두 5천여 점이며 그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왕 관꾸미개

▲ 왕 관꾸미개

왕이 쓰는 모자 양옆에 거는 꾸미개로,

왕의 머리 부분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사기에 왕은 자줏빛 큰 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고 금빛으로 꾸민 검은 모자를 썼다는 기록과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 금목걸이

▲ 왕 금목걸이

흑옥을 금테로 둘러싸 연결한 것으로 왕의 허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왕 금귀걸이

▲ 왕 금귀걸이

관꾸미개 아래에서 발견된 왕의 귀걸이는 크고 작은 하트 모양의 장식이 특징입니다.

왕 뒤꾸미개

▲ 왕 뒤꽂이

왕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된 뒤꽂이는

역삼각형의 몸체와 세 갈래의 긴 꼬리로 구성되었으며,

날아가는 새의 형상을 하였습니다.

왕 허리띠와 띠드리개

▲ 왕 허리띠와 띠드리개

허리띠는 작은 타원형 판을 연결하고 양 끝에 고리와 꽃 모양의 꾸미개가 달렸고,

띠드리개는 크고 작은 타원형 판을 연결하였는데,

큰 타원형 판에 작은 하트를 두 개씩 달아 장식하였습니다.

백제 사람들은 하트를 무척 좋아했나 봅니다.

왕비 목걸이

▲ 왕비 목걸이

아홉 개의 금 막대를 연결한 목걸이로 9절 목걸이라고 부르며,

7절 목걸이와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왕비 귀걸이

▲ 왕비 귀걸이

나뭇잎 모양의 달개를 사슬로 연결한 왕비의 귀걸이이고,

▲ 왕비 귀걸이

중심 고리에 노는 고리가 추가된 형태이며,

나뭇잎 모양의 달개를 장식한 왕비의 귀걸이입니다.

굽은 옥 꾸미개

▲ 굽은 옥 꾸미개

손가락 만한 크기의 굽은 형태로 가공한 옥에 모자를 씌운 꾸미개로,

엄지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모자를 세공한 백제인들의 금속 가공 기술은 과히 독보적입니다.

왕비의 칼

▲ 왕비의 칼

왕비의 머리, 허리, 발 부분에서 발견된 왕비의 손칼입니다.

금동 신발

▲ 금동 신발

금동 신발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유물 조사 과정을 거치면서

작은 편들을 수습하여 원형대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백제인들의 우수한 장인 기술이 매우 독보적이지만

대한민국의 복원 능력은 가히 놀랄 만합니다.

벽돌

▲ 벽돌

무령왕릉 내부 벽면에 축조된 연꽃 무늬 벽돌입니다.

측면의 연꽃을 보면 2매가 결합하여 하나의 연꽃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덤을 조성하기 오래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통해 백제 문화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을 모두다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아이 손을 잡고 가족이 함께 박물관을 찾아

보다 많은 유물을 감상하시면서 백제의 우수한 문화를 감상하시길 희망합니다.

공주국립박물관

○ 주소: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 운영시간: 09:00~18:00(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휴무일이 대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평일 휴관)

○ 전화번호: 0507-1401-6300

○ 관람료: 무료

○ 주차 가능

○ 기타 사항: 웅진 백제 어린이 체험실 및 충청남도 역사문화실 운영

* 취재일: 2025년 2월 5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지금 즉시 출발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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