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전
[용인여행] 우리 마을 역사 유적지, 채제공 묘소
"본 기사는 용인시 SNS 시민 서포터즈가 취재한 기사입니다."
용인시 SNS 시민 서포터즈 취재기자 곽미숙입니다.
정조가 아꼈던 조선 후기의 명재상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묘소가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채제공(蔡濟恭, 1720년 5월 12일
(음력 4월 6일) ~ 1799년 2월 22일(음력 1월 18일)
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로,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활동하며
조선 사회의 개혁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본관은 평강,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또는 번옹(樊翁), 시호는 문숙(文肅)입니다.
채제공 묘역 맞은편에는
선생의 호를 따라 이름 지어진 번암공원도 있어서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채제공 묘역부터 번암공원까지
하루 나들이 코스로도 추천드립니다!👍
채제공은 젊은 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고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하며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정조 즉위 후였는데요.✨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채제공을 믿고 따랐으며,
왕이 된 후 그를 중용했습니다.
채제공은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고 정조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개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규장각을 강화하여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고,
서얼 출신 인재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등
신분제 완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원 화성 건설을 총괄하며
상업과 군사적 측면에서 효율적인 도시를 설계했죠.
그러니 번암 채제공의 정책은
정조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수밖에요.👍
그런 채제공은 노론의 견제로
몇 차례 실각하기도 했지만
정조는 그를 재기용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해요.
채제공은 평생을 청렴하고 강직한 자세로
정조를 뒷받침했는데 채제공의 죽음은
정조에게 아주 큰 슬픔이었을 거 같습니다.
묘역 앞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조 어제 채제공 뇌문비가 있는데요.
‘어제’는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라는 뜻이니
채제공을 위해 정조가 직접 지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이것만 보더라도 채제공에 대한 정조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묘역을 한 바퀴 돌아내려오면서
채제공의 강직한 정치적 신념과 개혁 정신은
조선 후기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정조의 든든한 친구로도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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