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 범서 옛길의 하나인 태화강 100리 길을 걷고 싶어 길을 나섰습니다.

수많은 애환과 사연들이 묻어있는 옛길에서 이 길을 오간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산바람이 나뭇가지에 멎으며 그들의 숨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범서 옛길을 포스팅합니다.

울산과기대 가기 전, 범서 곡연마을을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왼편 능선에 사연댐을 바라보며 비닐하우스가 있는 도로로 차를 몰아 대방교 건너편에 주차했습니다.

‘곡연(曲淵)’은 반구천에서 하류까지 아홉 개의 소(沼)가 만든 ‘구곡(九曲)’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범서읍 사연리 곡연마을은 반구대에서 흘러온 반구천과 언양에서 흘러온 반연천이 합류해 태화강에서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강물에 떠내려온 토사의 충적지로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합니다.

지척에 둑 높이 46m인 사연댐 제방이 많은 사연을 간직한 커다란 벽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댐은 태화강 100리 길 2구간인 왕복 6km ‘범서 옛길’ 걷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안내판은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박물관 방향으로 가라고 안내했습니다.

서너 채 집을 지나고 논을 지나 나무들로 가득한 산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호방한 오솔길 같은 원만한 산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가는 길마다 산이어서 나무마다 가을 연가를 부르며 치장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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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호흡을 가누며 첫 고개를 오름 하자 누군가 설치해 놓은 그네가 한 번 타서 날아 보라고 종용합니다.

불현듯 소싯적 동심이 성큼 다가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여기서 곧장 능선을 따라 오르면 학이 춤추는 산인 무학산이 나옵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대곡박물관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옛날 대곡과 한실마을 사람들이 범서 오일장을 오가며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지나자, 울산의 젖줄인 사연댐이 광활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장장 3km 길이에 물을 담고 있는 댐이 죄다 비우고 있었습니다.

물을 비운 댐의 외곽에 흉측하게 황토색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흔적이 나이테처럼 층층이 나있었습니다.

속을 드러낸 댐 한복판에 모래톱이 섬처럼 외로이 얹혀있습니다.

드러낸 바위가 지친 두꺼비 한 마리가 헤엄치는 형상으로 보입니다. 댐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연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설치된 안내판에 사연댐 이야기가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

사연댐을 축조한 지 벌써 반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에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건설했으니 말입니다.

​햇살을 머금은 호방한 숲길을 걷다 보면 에너지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 옛날 사람이 오간 흔적이 아직 온기로 남아있는지 뿌연 먼지가 일어났습니다.

인적 드문 산은 묵상에 들었고 나무들은 푸릇푸릇 한 향기를 내뿜으며 길손을 맞이합니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이 묵언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나 봅니다.

나무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도 평생을 지낼 둥지임을 알고 있나 봅니다.

줄지어선 다른 나무들과 어깨를 함께하며 늘 승천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어떤 나무는 껍질이 흉측해 거친 몸매를 보여줍니다. 더러는 옹이를 앓고 있습니다.

그 나무는 아픔을 밀어내고 희망을 구원하고 있었습니다.

고목은 선명후성의 요가 자세로 넘어지지 않고 서 있어 근엄했습니다.

쓰러지면 동료 나무들을 부러뜨려 죽이기 때문에 공작 자세로 수련하며 하늘에 구원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무도 겸손하게 선 채로 있습니다. 그야말로 남을 배려하는 군자의 자태입니다.

​껍질이 벗겨진 소나무가 흉측하게 보입니다. 멧돼지가 체력 단련을 한답시고 나무껍질을 벗겨 버렸지 싶습니다.

갑자기 멧돼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양손에 잡고 있는 등산용 지팡이에 힘을 주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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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따라 호방한 길을 걷다가 수몰로 사라진 한실마을로 가는 내리막길을 내려갔습니다.

멀리 보이는 한실마을은 과히 하늘 아래 첫 동네를 방불하게 했습니다.

그 옛날 이 길을 오갔던 사람들은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범서 장날은 해방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시장 모퉁이에서 소고기국밥으로 배를 채우는 그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끼리끼리 모여 산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키운 소를 팔고 새로 구입한 큰 소를 앞세우고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댐의 수위가 미치지 않아 여태껏 살고 있는 한실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1965년 사연댐에 수몰되기 전, 90여 가구가 넘었던 큰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귀촌한 사람들을 포함해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련한 기억 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온 한실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를 줍니다.

워낙에 큰 마을이었음을 알려주는 제당이 마을 복판에 남아 마을을 수호하고 있었습니다.

수몰된 구역은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반곡초등학교 분교는 폐교되었고 지금은 이곳 출신의 개인 별장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뛰어놀았던 운동장이 텅 비어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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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게 서 있는 은행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걸려 있었습니다. 비바람에도 부서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은 까치의 정성을 느꼈습니다.

둥지를 떠난 까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정다웠던 까치 울음소리가 그립습니다.

원시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한실마을 소암골로 들어갔습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골짜기는 태고의 모습으로 환희를 주었습니다. ​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오묘하게 생긴 골짜기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맑은 물과 기묘하게 생긴 바위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신비했습니다.

여태껏 갈려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다른 곡절이 있는 건지 태고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구간에 걸쳐 있는 절경을 혀를 차며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다 일어섰습니다.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시의 모습을 보여준 소암골 풍경이 눈에 선했습니다.

길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따라 동행했습니다.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한동안 범서 옛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주 블로그 기자'의 원고로 울주군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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