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영천 향교
어릴 적 학교에서나 혹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한 번쯤은 향교 방문을 해 보았을 텐데요.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역의 향교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국립 지방 유학 교육기관으로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고
선현들의 제사를 담당하는 곳으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영천 교촌에 위치한 영천 향교를 다녀왔는데요
영천 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습니다.
도착한 영천 향교는 시가지 쪽에 위치하고 향교 앞 담벼락 쪽에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방문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향교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삼일제에요.
문이 닫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낮은 담벼락 사이로 살짝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삼일재는 이 지역의 향사들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서
과거에 진급한 후손들이 경비를 내고 장학금을 전달하며 참된 인격 함양을 위한 학문을 연마하던 곳입니다.
향교 출입문인 외삼문인 유래루는 하늘로 치솟아 있는 것 같은 처마에서 웅장함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예전의 향교가 지역민들에게 유교 문화를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 향교의 모습도 지역민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제공하며 지나간 과거에 머무른 공간이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여름꽃인 배롱나무의 영롱한 자태를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일찍 방문했더라면 붉은 꽃잎이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지고 있는 모습에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배롱나무와 마주하고 있는 400년 된 회화나무의 모습도 경이로웠는데요.
보호수로 지정되어 지역주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향교를 방문했을 때 대부분 은행나무가 향교와 함께 역사를 같이하는 모습을 많아 봐왔는데
영천 향교는 은행나무가 아닌 회화나무가 심겨 있어 새로웠습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나무 가운데서 으뜸으로 대접을 받아왔는데 선비들의 나무이며' 학자 나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명륜당은 강의를 하던 곳이에요. 1546년 군수 이중랑이 창건하였고
이후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게 되는 고초를 겪게 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영천 향교에는10칸의 명륜당을 비롯한 5칸의 대성전과 동재, 서재,삼일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남아 있습니다.
성현들의 초상화처럼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학문을 익히고 정신을 수양하던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지금 이대로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어요.
처마에 달려있는 화려한 청사초롱 등불에서 전통의 미가 더욱더 느껴지는데요.
시원한 누각에 앉아 보니 부는 바람에 이마의 땀방울이 사라지 듯 맘속에 품고 있던 근심까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재와 서재는 현재의 기숙사 같은, 유생들이 기숙하는 공간입니다.
다른 지방에서 혹은 배움에 열정이 가득한 유생들이 기거하며 학문을 익힌 곳이라 생각하니
오늘날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명륜당 뒤로 보이는 내삼문을 통과하면 성현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대성전을 볼 수 있습니다.
대성전의 문은 닫혀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어요.
천천히 향교를 돌아보니 오래된 문살과 빗 바랜 나무에서 따뜻한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마르고 닳도록 만지작거렸을 문고리는 닳아서 빤질빤질 빛이 나기 시작하네요.
별 볼일 없던 작은 나무토막들이 서로 얽히고설키어 오랜 세월을 함께 지탱해 온 모습이 경이롭고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천년만년 지금의 정감 넘치는 모습으로 이 자리에 항상 우뚝 서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영천 향교 나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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