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 가평 문화재에 관심이 많으신 분

♧ 조종면의 행정구역 기원을 알고 싶으신 분

가평 최초의 경기도 기념물 조종암 여름답사

사진.글_가평군청 홍보미디어팀_제5기 파인너트기자단

지난 이방실장군묘 취재에서 가평 관내에는 가평향토문화재 외에도 경기도기념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경기도기념물에 관심이 생겨 관련자료를 더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우선 경기도기념물의 정의부터 알려드리자면, 문화재는 국보, 보물과 같이 국가가 주도하여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와 '국가등록문화재'가 있고 그 하위개념으로 각 시도에서 지정하는 '시도지정문화재'가 있으며, 이 시도지정문화내는 또 크게 네 가지(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분류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기념물'이라고 하네요. 가평 관내에는 이같은 기념물이 생각보다 많이 지정되어 있는데, 오늘은 가평 관내에 있어 최초로 기념물로 지정된 조종암을 집중적으로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입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우리지역의 역사이야기, 그럼 조종암의 이야기속으로 함께 들어가보도록 할까요?

가평 조종암 방문안내(2024)

문화재위치

편의시설

주의사항

조종면 대보간선로 443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곳)

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 없음

(인근 갓길에 주차후 문화재 방문)

풀이 많이 자라있으므로 방문에 주의

(뱀, 벌, 진드기, 독충 등)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말자는 취지에서 조종천 옆 바위에 새긴 암각문

조종암의 의미와 왜 이곳에 글씨가 새겨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드립니다

가평군 최초로 경기도 기념물(제28호)로 지정된 조종암은 조선 숙종10년(1684)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풀어준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의 여러 글귀를 당시 가평군수였던 이제두와 허격, 백해명 등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고 그 앞에 비석과 단을 만들어 세운 뒤 제사를 지내면서부터 '조종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조종암(朝宗巖)이란 임금님을 뵙는 바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요, 우연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조종암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43km지점)에 경복궁 근정전이 위치하고 있음을 지도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임금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바위도 특이하게 다가왔지만, 왜 하필 많고 많은 바위들중에 이곳에 글씨를 새기게 되었을까 싶은 궁금증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인터넷에서 발견한 기고문을 인용하여 아래에 정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종암(朝宗巖)의 의미 새기고 명지계곡의 시원함에 빠지다_프레시안(2019.6.25)

(중략)...조종이란 여러 강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모인다는 뜻임과 동시에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종천이 조종암을 조성한 당시의 유신들에게 선택되어 '숭명배청'의 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조종암은 암각문, 비석, 단지 등의 유적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암각문은 한 곳에 모여있는 여러개의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비석은

그 바로 앞에 세워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통묘가 있으며 그 앞으로는 맑은 조종천이 산굽이를 돌아 흐르고 있습니다...

친명배청의 정신이 깃들여져있는 다양한 암각문이 커다란 바위 이곳저곳에 새겨져있어요.

각 글자가 의미하는 뜻은 아래에 정리한 표를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산비탈에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있는 것도 신기한데 옛 사람들이 이곳에 글씨를 새겨놓았다니 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는데요, 조종암의 바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곳곳에 새겨진 다양한 문자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글씨가 크고 명확하게 새겨져 3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글씨가 있는 반면, 오랜시간 풍화되어 그 흔적만 보이는 글씨들도 존재하고 있었답니다. 글씨는 대부분 바위 상단부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이곳에 새겨져있는 '사무사(思無邪)',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藩邦)',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途遠 至痛在心), '조종암(朝宗巖)'이란 글씨들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래에 정리한 표를 참고해주시면 좋을 듯 하네요.(*조종암 가장 하단부에는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유증교가 작성한 견심정(見心亭)이라는 글씨도 남아있으니 함께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사무사(思無邪) : 생각에 사특(요사스럽고 간특하다)함이 없다

※우암 송시열이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사무사를 새김

일모도원 지통재심 (日暮途遠 至通在心) : 해는 저물고 갈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

※우암 송시열이 효종이 내려준 문구를 직접 글로 작성하여 가평군수 이제두에게 이를 배위에 새기도록 부탁함.

만절필동 재조번방 (萬折必東 再造瀋邦) : 일만번 꺾여도 반듯이 동력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주었네

※이제두, 허격, 백해명 등 여러 선비들이 힘을 합하여 위의 글귀와 선조의 어필을 바위에 추가로 새김.

조종암(朝宗巖) : 임금을 뵙는 바위

=※선조의 후손인 낭선군의 글 '조종암'을 바위에 새김

조종암의 내력을 한글자 한글자 비문에 새긴 조종암기실비

조종암의 내력을 기록하기 위해 1804년에 세워진 조종암기실비

조종암 전면으로는 조종천을 내려보고 있는 듯한 커다란 비석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별도의 설명이 존재하지 않지만 해당 비석은 조종암의 유래를 적은 비석으로서 조진관이라는 인물과 김달순이라는 인물이 순조4년(1804)에 만들어 세웠다고 하네요. 2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비문에 새겨진 글씨들은 한글자 한글자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았는데요, 다만 내용이 전부 한자어로만 적혀있어 해석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조종암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비석인 만큼 해당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내용이 이곳에 함께 안내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종면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조종암에 대한 후기는 이것으로 마치며 해당 장소 방문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댓글로 글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 본 게시물은 가평군 SNS 서포터즈가 작성한 글로 가평군과 공식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title":"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된 가평 최초의 문화재, 조종암의 여름답사기","source":"https://blog.naver.com/ecopiagp/223545180837","blogName":"가평군 공..","blogId":"ecopiagp","domainIdOrBlogId":"ecopiagp","nicknameOrBlogId":"가평군","logNo":223545180837,"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