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로는 많은 충신이 있었으나,

김제 지역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곡창 지대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어

이름 없이 민초로 사라진 사람이 너무나 많았는데요.

<김제향교지>의 ‘충훈’ 편에 나오는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71명 중 한 사람인

정화암 선생의 생가로 향해봅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일본에 맞서

항일 투쟁 전개 및 독립운동에 일대 활력을 불어넣었던 인물

정화암의 생가로 향하는 마음은

숙연해짐과 동시에 다소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한 발자국씩 발을 옮겨봅니다.

후장마을에 자리한 이곳 일대의 김제의 민속문화재와

독립운동가였던 분의 생가에는 다른 집과 달리 태극기가 걸려있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대략 짐작하게 합니다.

가옥의 가운데 간판에는

'정화암 선생 생가'라는 글씨가 적혀있는데요.

이곳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정화암 선생은

1896년 9월 14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월촌동에서 태어났으며,

정화암(鄭華岩)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는데,

‘화암’은 중국에 건너가면서 부르게 된 호이며,

본관은 동래이고, 본명은 정현섭(鄭賢燮)입니다.

1919년 고향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미국 의회 사절단이 내한했을 때,

일본의 침략상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

경찰의 추격을 받아 체포되어 곤욕을 치른 뒤

1921년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습니다.

망명 이후 1928년

이회영·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무력투쟁을 통한 광복 쟁취를 위해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군자금 확보 방안을 강구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1928년 재중국조선 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고,

1931년에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 공사관에 폭탄 투척 등 무력 항쟁을 지속하였습니다.

1933년 3월 이강훈·원심창·백정기·유기문·이용준·진수방·전화민 등과 규합,

상해해방연맹을 결성하고,

1936년 남화연맹의 기관지인 남화통신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의 시책에 협조하여

1940년부터 상해 방면에서 활동하며

광복군의 현지 책임자로 미·영 포로수용소의 소재지를 확인하여 보고하는 등

정화 활동에 기여하였습니다.

8·15해방 후 귀국하여,

4·19혁명 후 통일사회당 정치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8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생가 옆 벽면에는

'항일운동 10,000km 청소년 대장정 탐방단'이 방문한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이 탐정단의 행적은 국내 혹은 국외에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직접 만나보며 역사를 앎과 동시에

긴 대장정을 통해 여행에 의미를 담는 시간을 갖는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이루어지는 모임입니다.

이렇게 타 지역인 김제로의 방문을 통해

민족의 소중함과 충국 선열들의 얼과 정신을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은

뜻깊은 시간이 아닐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 항일 역사 대장정의 참여로 이곳을 방문한 단체에서

2016년 10월 15일, 우리나라의 대표 꽃인 무궁화 기념 식수를 볼 수 있는데요,

7-10월이면 꽃이 피는 시기에 방문하면

생가와 함께 무궁화로 첫인상을 담겠지요.

한파의 겨울을 오롯이 그대로 지내고 있는 나무의 꽃봉오리는 바짝 말라 볼품없이 자리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예쁜 모습으로 활짝 핀 무궁화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맞이해주겠지요.

정화암 생가 바로 뒤편에는 여러 큰 나무들이 자리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일 오른쪽에 수령이 제일 오래된 듯한 나무는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멋진 형태로 시선을 이끕니다.

멀리서 보아도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일지 궁금하게도 하는데요,

위와 옆으로 뻗은 나무의 형태가

굳고 기센 정화암 선생의 기운을 받은 듯

강인하게 느껴집니다.

한동안 이곳을 떠나기 전 주위를 크게 둘러보는데

갑작스레 많은 새들이 어디에선가 날아와

생가 뒤편의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숨어들어 자리해

너 나 할 것 없이 크게 새의 울음소리를 외칩니다.

도시 속에서 벗어나 있는 김제의 한적한 후장마을은

인적을 느낄 수 없어 자연의 소리만이 가득합니다.

금산사 상가 도로변에는

‘애국지사 정화암 선생 사적비’와

‘애국지사육탄삼용사고안영권하사전공기념비’(6·25전공자) 등이 세워져

김제 지역의 의기를 널리 알리고 있는데요,

금산사에 방문하면

거리가 다소 있지만 역사여행을 즐겨 한다면,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면

생가도 방문하여 애국지사의 정신이 담긴 역사의 흔적을 따라 만나보세요.


찾아오시는 길↘↘↘

김제시 장화동으로 정화암 선생의 생가 방문하러 오세요~!

분명 독립운동가의 높은 기상을 얻어 가실 거랍니다!


※ 글 참고-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김제문화대전

사진·글 ⓒ 2024. 김제시 SNS 서포터즈, 최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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