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설총, 최치원 선생의

애국, 애민 정신과 공적을 기리기 위한

남악서원 제향

김유신, 설총, 최치원 선생의

애국, 애민 정신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진주가볼만한곳 진주 금곡면 죽곡리에 위치한

남악서원에서

2024년 4월 26일 남악서원 제향을 지냈습니다.

금곡에 위치한 남악서원은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서원은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장소입니다.

남악서원은

신라(新羅)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지(要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金山)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에

비몽간(非夢間)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 위업의 가르침을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1922년 지방 유림(儒林)들이

중건(重建)하고

경주(慶州) 서악서원(西岳書院)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南岳書院)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당(祠堂)에는 김유신(金庾信)과

최치원(崔致遠) 선생(先生)

설총(薛聰) 선생(先生)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사당, 서원, 솟을 대문이

남북(南北)의 축상(軸上)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間),

측면 2칸의 재(齋)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字形)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五樑構造)

팔작지붕입니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前退間)이 없는 평면형입니다.

남악서원 제향 봉향

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설총 선생,

최치원 선생의 애국, 애민 정신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과 후손, 지역 주민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진행되었습니다.

제례는 전통 제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사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前退間)이 없는 평면형입니다.

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전통 제례 절차에 따라

영신례를 시작으로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를 거쳐 망료례로 진행되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 제12호

(1983년 7월 20일 지정) 남악서원 사당에는

신라의 삼성현인 개국공 김유신,

홍유후 설총, 문창후

최치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김유신

고구려의 낭비성 전투,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대승하였고,

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12세 손이며,

마지막 왕인 구혜왕의 증손입니다.

삼국유사에 김유신이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등

일곱 별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17세 때 경주 백운산에 입산하여 수련하였으며

수련 시 난승이라는 노인에게서

삼국을 병합할 비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진평왕(629년) 때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

큰 공을 세워 무용을 떨치기 시작하였으며,

선덕여왕(644년)때 관계에 출사하였습니다.

백제의 가혜성 등

7개 성을 공격해 승리,

백제의 경내로 쳐들어가

12개의 성을 빼앗았으며

그 공으로 이찬의 벼슬에 오르고

상주행군대총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삼국통일 후 당나라가 신라까지

흡수하려 하였으나

공의 지략으로 당군을

격퇴시켰다고 전해집니다.

<흥무왕 김유신 영정>

1921년 4월 당시 최고의 초상화가인

채용신이 그린 영정으로

면류관에 예복을 입고

각대를 착용한 전신교의 좌상입니다.

화폭 상부에

開國公金先生形像이라는

영제가 있고.

뒷면에는 초상을 직접 그린

채용신의 자필 묵서 명문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대표적인 무장인

김유신의 강직한 풍모와

기백을 잘 전달해낸 작품으로

20세기 초 전신사조를

비교적 충실히 수행한 대표적 초상화가인

채용신의 솜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아울러 현존하는 김유신 영정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오래된 초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설총

통일신라의 3대 문장가로

이두문자를 집대성한 학자입니다.

아버지는 원효, 어머니는 요석공주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우리말로 구경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습니다.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문장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공의 시경은 계속 추앙되며

사후 300여 년 뒤 고려 8대왕 현종 때

홍유후라는 시호가

추증되었습니다.

<설총 선생 영정>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은

통일신라의 3대 문장가로

이두문자를 집대성한 학자입니다.

유학에 뜻을 두고

공맹의도를 숭상하신 분입니다.

설총의 초상은 가장 근대(1970년대)의 영정으로

문화재로는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최치원

한림학사, 수 병부시량, 부성 태수,

아찬 벼슬을 거쳤으며

유교를 대표할 많은 학자를

배출한 대학자입니다.

경문왕(868년) 때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

18세에 당나라 대과에 급제한

전무후무한 대학자입니다.

중년에 귀국하여 진성왕(894년) 때

10여 조의 시무책을 올려

신라 말의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년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은거, 여생을 마쳤습니다.

<최치원 선생 영정>

통일신라 후기 학자이며 문장가였던

문창후 최치원의 영정은 기존에 알려진

쌍계사본이나 해인사본의 초상화와는

유형을 달리하는 일반 공신상으로

그려진 유일한 영정입니다.

인물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실제 인물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매우 뛰어난 사실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양식사적으로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와

특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므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진주가볼만한곳 남악 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1983년)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흥무왕 김유신, 최치원 선생의 초상은

2022년 1월 6일

제2022-16호로 지방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설총 선생,

최치원 선생의 애국, 애민 정신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과 후손, 지역 주민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진행된

남악서원 제향은

세 선생님을 깊이 존경하고

사모하는 경모함이며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는

뜻깊은 제향이었습니다.

매년 음력 3월 18일에 진행되는

진주가볼만한곳

남악서원 제향에 참석하셔서

세 선생님의 애국, 애민정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 본 포스팅은 SNS 서포터즈가 작성한 글로서 진주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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