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역사의 현장에서 유관순 열사를 만나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289-35
새해를 맞이해서 천안 아우내 장터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아우내 장터 공영 무료주차장에 주차하고 맞은편으로 잠시 걷다 보면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 기념공원의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곳의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장터1길 12-23입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당시 헌병주재소 부지와 시위 군중이 일본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장소를 보존하고,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출처: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안내문] |
이곳이 바로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헌병주재소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시위 군중이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장소이기도 하네요.
공원 안에는 사방형으로 독립 만세 운동 역사현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함께 잠시 역사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기념공원으로 입장하면 정면 중앙에 조형물이 보입니다.
그날의 함성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박민섭 작가의 작품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가슴에서 들끓는 함성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합니다.
조형물 뒷면이 궁금하여 돌아가니 태극기의 모습을 더 뚜렷이 볼 수 있네요. 그들의 함성 뒤 조형물이 태극기입니다.
그날의 함성 중심에 있던 유관순 열사에 대해 찾아보게 됩니다. 천안에서 보냈던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잠시 살펴볼까요.
1902년(광무 6)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영명학당에서 수학하다가 1916년, 미국 여성 감리 교회 선교사 사애리시(史愛理施) 부인의 권유로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학했다. 당시 이화학당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고, 집이 멀었던 유관순도 자연히 가족과 헤어져 기숙사에 살며 공부하게 되었다.[출처: 나무위키 유관순]
어린 나이에 애국심 하나로 희생한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감히 저는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정신 자체로 존경합니다. 그녀의 희망을 우리는 잘 지키고 있는 걸까요. 다음 작품은 임정혁 작가의 ‘하나되어’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마음은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대한독립만세! 그녀의 이화학당 생활에서부터 시작된 독립운동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유관순이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교장 룰루 프라이는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참가를 말렸지만, 학생들은 학당의 담을 뛰어넘어 기어이 전원이 참가했다. 이 여파로 1919년 3월 10일에 일제는 전국 모든 학교들에 강제로 휴교령을 내렸고, 함께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 천안으로 귀향해 만세 운동에 참여했는데, 3·1 운동 중 '천안 아우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출처: 나무위키 유관순]
유관순 열사가 어린 나이의 소녀로 감당해야 했던 고초들과 일본군에게 당당했던 말했던 그녀의 바람은 대한독립 만세!
그녀의 고통을 다시 돌아보고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대해야 할지도 성찰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만세 운동 중 유관순의 부모가 모두 일본 헌병에게 살해당했고, 이 과정에서 유관순도 친일파 조선인 정춘영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유치장에 갇힌 후 열흘 만에 공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된다. 그리고, 공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 당시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을 맹세할 것인가?" 하는 일본인 재판장의 질문에 유관순은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고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라며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졌다. [출처: 나무위키 유관순]
그날의 함성으로 서대문 형무소 수감되었던 유관순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옥사하였습니다.
유관순은 결국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후유증 끝에 향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옥사했다. 얼마나 고문이 참혹했던지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을 당시에 서대문형무소에서 거부할 지경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이화학당 교장 룰루 프라이는 유관순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러 주었다.[출처: 나무위키 유관순]
기념공원은 중앙 조형물을 중심으로 둥글게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조형물을 보며 그날의 역사의 현장을 다시 새겨봅니다.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 기념 공원의 정면에서 왼편부터 돌아보면서 마지막 오른편 우측에 ‘아우내 만세 운동 발생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은 기록된 바와 같이 1919년 3·1 운동 당시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일어난 아우내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입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는 매년 3월 1일에 기념식이 열린다고 하니 올해 3월 1일에는 이곳을 방문해보겠습니다.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 기념 공원과 공원 앞 도로 및 우측 일대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한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병천 아우내 장터와 일제의 헌병 주재소가 있던 곳이다.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 기념 공원은 3·1 운동 90주년을 맞아 조성하여 2009년 10월 9일에 준공하였다. 공원은 당시 헌병 주재소 부지와 시위 군중이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장소를 보존하고, 애국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하며,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천안시에서 조성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집필자:김진호]
그 날의 함성으로 염원하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염원하던 독립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지금까지 천안에 있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마련해놓은 조형물들을 보면서 역사의 그날을 유관순 열사와 함께 떠나보았습니다.
천안에 가면 꼭 방문해서 역사의 현장에서 애국열사들의 정신을 한번 체험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장터1길 12-23
○ 이용시간: 상시 연중무휴
○ 입장료: 무료
※ 취재일 2025.1.5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앤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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