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칼럼니스트 · 울산제일일보 기자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물회는 한마디로 ‘축복’이다. 원체 식감이 좋은 회는 고추장이든, 쌈장이든, 간장이든 그냥 찍어 먹어도 고소하고 입안이 정화되는 듯한 신선한 맛을 느낄 수가 있는데 물회라는 음식은 그 이상을 뽐내기 때문이다.

먹기 좋게 뜬 수북한 회(해산물)에 각종 야채와 고추장 소스, 그리고 얼음과 물.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속에는 가끔 국수까지 투입된다. 이렇듯 버라이어티한 물회는 바다의 산채비빔밥 같은 존재다. 다만 산채비빔밥은 따뜻하지만 물회는 차가운 존재. 그렇다. 시원한 바다 속 풍미가 느껴지는 물회는 이제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또 울산 동구는 물회라는 음식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다가 곁에 있으니까.

동구 방어동 향숙이네회 (사진 제공 이상길 칼럼니스트)

벌써 여름이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을 위해 물회 맛집으로 소문난 ‘향숙이네회’를 찾게 됐다. 독특한 가게 이름 때문에 익히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직접 찾아 물회를 맛보기는 처음. 아니나 다를까 동구를 대표하는 물회 맛집 답게 차별화가 분명했다.

우선 이 집 물회는 ‘오징어물회’가 대세라는 점에서 다른 물회 음식점과 다르다. 40% 넘게 뛰어 버린 오징어 물가를 생각하면 오징어물회는 엄두를 내기 쉽지 않지만 향숙이네는 이전부터 해오던 인기 품목이라 올해도 정직한 맛과 가격으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가자미 물회도 잘 나간다고 하는데 오징어물회가 조금 더 잘 팔린다고 한다.

향숙이네회의 인기 메뉴인 오징어물회 (사진 제공 이상길 칼럼니스트)

사실 오징어물회라는 게 그렇다. 가자미물회 등 각종 해산물까지 포함된 그 어떤 물회보다 부드러운 식감에선 단연 탑이다. 개인적으로도 오징어물회는 태어나서 이날 처음이었는데 그동안 먹어왔던 물회들과는 차원이 다른 식감에 조금 놀랐다. 또 얇게 썬 양파와 당근, 쪽파는 고추장 소스와 잘 버무려져 다소 느끼할 수 있는 오징어만의 식감을 상큼하면서도 묵직하게 잡아줘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울러 얼음 슬러시가 아닌 각얼음인 점도 가늘게 썬 오징어와 야채들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해 순간 앞으로 물회와 관련해 내 원픽(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징어물회라 될 거라고 감히 생각했더랬다.

다만 이 집 물회는 다른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은 국수는 안 나오니까 참고하시길. 대신 국수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향숙이네만의 특별한 서비스 음식이 나오는데 바로 생선구이와 매운탕이다. 바삭바삭한 생선구이의 정체는 적어(빨간 고기)로 부드러운 식감의 오징어에 맞서 물회 안의 야채들과 함께 맛의 균형을 잡아줬다. 또 깊은 맛의 매운탕은 물회 만을 먹을 때도 그렇지만 특히 물회에 밥을 말아 먹을 때 특유의 온기와 맵기로 역시나 맛의 균형을 잡아주더라. 참, 생선구이와 매운탕은 무조건 2인 이상 주문했을 때 제공된다.

일행들과 배부르게 물회 한 사발을 해치우고 나자 비로소 가게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향숙’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칸은 물론 아카데미까지 휩쓴 봉준호 감독의 출세작이자 불세출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 해서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서 열심히 물회를 만들어내고 계시는 여사장님의 이름이 ‘향숙’이라서 횟집 이름을 ‘향숙이네회’로 지었다고 한다.

게다가 예사롭지 않은 음식 맛에 맛집 소개 글을 쓰기 위해 따로 전화해서 캐물었더니 횟집과 관련해선 뼈대 있는 집안 후손이라는 것까지 알게 됐다. 바로 1980~90년대 방어진 일대 횟집을 주름잡았던 ‘남석횟집’의 조카였던 것. 김향숙씨는 당시 남석횟집에서 이모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이 고향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방어진이 고향인 김씨는 “당시 남편은 울산 장생포에서 직업군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며 “결혼한 뒤 이모에게서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함께 횟집을 차리게 됐다. 회센터 등을 거쳐 ‘향숙이네회’를 개업한 건 8년 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아도 <살인의 추억>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과 같아서 횟집 이름에 대해 묻는 분들이 많다”며 살짝 웃어 보였다. 향숙이가 등장하는 영화도 흥행을 했고, 향숙이가 만드는 물회도 지금 흥행 중이다. 초여름 오후 ‘물회의 추억’은 그렇게 유쾌했다.

상길 칼럼니스트 : 울산동구 서부동 토박이. 울산제일일보 기자이자 영화·드라마 파워블로거. 내돈내산 내맘대로 맛집 탐방을 하며 깐깐한 입맛으로 자체 평가한 음식을 감칠맛 나는 글을 선보이고 있다.

※ 대왕암소식지 2024년 여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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