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름 피아니스트·동구 출신

그때가 언제였더라. 내가 처음 현대중공업 체육관에서 보았던 공연을.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거슬러…보자, 보자, 보자 찾았다! 1986, 윤복희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내가 태어난 해인 1981년 서울에서 한국 첫 공연을 시작하고 5년 후 전국 순회공연으로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체육관을 찾았다. 당시 5살이었던 솜털 뽀송뽀송한 내 인생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주인공 마리아 수녀가 엄마를 일찍 여읜 7남매의 가정교사를 맡게 되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어릴 적 특별한 날 텔레비전에서 늦은 시간 방영되는 탓에 늘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들어버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영화를 전부 보았다.

큰 저택, 엄마 없는 7남매, 가족 합창단, 수녀님과 아빠의 결혼, 조국을 떠나 망명한다는 내용 등 흥미로운 소재와 잘 만들어진 노래 등 그야말로 웰메이드 영화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극중 마리아 수녀였던 마리아 폰 트라프(Maria Augusta von Trapp:1905-1987)는 실존 인물로 그녀의 자서전 《트라프 가문의 가수들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는 제작되었으며 실제 가족들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9년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누렸고 뮤지컬 제작 6년 후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은 클래식 음악 중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인 오페라에 모던화 된 음악을 담아 시대에 맞추어 진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597년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무대 위에서는 가수들이 극중 역할에 맞춰 노래와 연기하며, 오케스트라는 그에 맞게 연주하고 때에 따라 무용수가 등장하며 무대연출 또한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오페라에서 모든 대사는 노래 형태로 주고받으며 이탈리아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프랑스 오페라는 프랑스어로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오페라는 들려주는 음악 외에 관객들에게 보이는 예술의 친절을 베풀지만 언어의 한계로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관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페라가 인기를 잃어갈 무렵 영국에서는 어려운 오페라 말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와 연극, 쇼 등을 섞은 형태의 공연이 시작되고 그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발전해 지금의 뮤지컬이 된다. 그리고 대중예술의 중요한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주인공의 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오페라와 달리 뮤지컬의 주인공은 연기와 춤, 노래도 한다. 그러다 보니 노래의 스타일이 달라지고 대사도 많아지고 소재도 더 다양해졌다. 당연히 원어도 고집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친절한 예술이 탄생된 것이다.

그 친절한 예술 덕분에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 작았던 나에게 당시 현대중공업 체육관은 너무나도 컸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무대 위에서 수녀 복장을 한 윤복희라는 가수가 서있던 그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후로 뽀송뽀송한 솜털이 없어져 버릴 때쯤의 나는 유럽에서 꽤나 오랫동안 음악을 공부하게 되는데 유학시절 영국, 체코, 독일 여러 나라에서 뮤지컬을 봤지만 흐릿한 내 인생의 첫 뮤지컬이 아직도 가장 좋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고백하건대 사실 오페라를 더 좋아한다. 친절한 걸 두고 왜 불친절한 음악을 더 좋아하냐고? 그러게 말이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로의 초대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어렵고 가끔씩 지겹다. 클래식은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는 연주이기에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339년 전 태어난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듣는다. 그 세월을 견뎌낸 음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해냈다. 나는 그 불친절함도 그 지루함도 그리고 그 어려움을 견뎌 내는 것마저도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심스레 과거로의 초대장의 서문을 적어본다.

지금은 고전이 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중 ‘My favorite things:내가 좋아하는 것들’ 노래와 함께 조금은 가볍게 클래식하게 하루를 시작해 보시기를 바란다.

※ 대왕암소식지 2024년 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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