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명 명예기자

동구를 품고 있는 염포산(鹽浦山)은 구민이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동네 뒷산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소리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신라 때 경주 남산에서 발원한 화랑도들이 치술령으로 말을 몰아 무룡산에 당도하였고, 그 여세로 한걸음에 달려 와서 고삐를 푼 곳이 바로 염포산 시리성이었다. 그 당시 화랑의 무예는 경천동지(驚天動地)와 같았을 것이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또, 염포산에는 조선후기 느지막한 나이에 감목관(監牧官)으로 부임하여 삼 년여에 걸쳐 동구의 명승을 시로 승화시킨 위항(委巷)시인 유하(柳下) 홍세태 선생이 지은 ‘신라고성’(新羅古城)이란 시(詩)가 비치되어 있어 오고가는 등산객들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의 시를 읽고 그 시대를 돌아보면서 염포산이 품고 있는 역사의 소리를 음미하는 것도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염포산 정상의 모습(사진 제공 : 이우명)

마골산에 잠든 의병장 서인충 장군은 염포, 서생 등에 쳐들어오는 왜놈들을 보고 의병들을 규합하여 놈들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박살내었다고 한다. 그 당시 호령하던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염포산 정상에 서면 들리는 듯하다.

멀리 등대산에서는 구슬픈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6.25 전쟁 후에 초임 교사로 부임한 앳된 서울 총각이 먼 타향에서 혼자 지내다가 선박회사의 따님을 만나 미래를 약속했으나, 그녀 아버님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이 ‘방어진 블루스’란 노래가 되어 전해오고 있다.

아래쪽으로 웅장한 골리앗 크레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철판을 접합하는 섬광이 축제의 불꽃처럼 눈부시다. 근로자들의 능숙한 몸놀림은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와도 같다. 그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그런 소리들이 합쳐져서 탄생한 거대한 배는 정들었던 동구에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다소곳이 하직 인사를 하고 뱃머리를 돌려 먼 대해로 나아간다.

염포산 표지석의 ‘203’이란 숫자는 울산대교의 주 탑과 대교 전망대의 높이와도 같다. 염포산 정상 팔각정엔 오승정(五勝亭)이란 현판이 있다. 산, 강, 바다, 고을 그리고 산업단지를 아우르는 것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는 뜻이라고 한다.

1970년 즈음에 산 들머리에 임도(林道) 양쪽으로 벚나무를 심었고, 지금까지 세월이 흐르면서 울울창창하게 하늘을 가린 숲 터널이 되었다. 벚꽃 피는 봄에 이 길을 산보하면 녹음방초(綠陰芳草)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윙윙거리는 벌들의 향연이 마치 커튼콜의 박수·함성과도 같다. 이 숲길을 오고가는 푼더분한 옷차림의 길손들에게서 웃음소리 들린다. 염포산 숲길의 꽃들을 쳐다보면 눈이 부시고 기분이 그렇게 갑신 할 수가 없다.

찬바람을 막아 등 따숩게 해주고 동해의 햇살을 포근히 안아주는 염포산! 화랑도의 거친 숨소리도, 유하의 시를 읊는 소리도 들린다. 서인충 장군이 호령하는 소리도, 애달픈 방어진블루스도 은은히 들린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근로자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돌안천 개울소리도, 호수공원 둘레 길 아래에서 찰랑이는 물소리도 들린다. 오롯이 역사의 소리를 간직한 염포산은 그래서 우리와 더불어 대대로 건강하게 지켜야 할 산이다.

※ 2024년 대왕암소식지 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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